[기고/권성원]‘신격호 기념관’ 개관과 애국적 기업가 정신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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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원 차의과학대학 석좌교수
권성원 차의과학대학 석좌교수
2009년 말, 한 기업인이 미수(米壽·88세)를 맞아 재단을 만들고 개인 돈 570억 원을 내놓았습니다. 롯데그룹을 창업한 신격호 명예회장이 그 주인공입니다. 미래 인재를 키우고 고향 주민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서였습니다. 재단 이름은 자신이 태어난 ‘울주군 삼동면’에서 딴 ‘롯데삼동복지재단’. 재단 창립기념 첫 사업으로 배뇨 장애로 고생하는 노인들에게 제대로 된 전문 진료를 받게 했습니다. 울주는 물론이고 다른 지역 노인들까지 수천 명이 혜택을 입었지요.

1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5층에 ‘신격호 기념관’이 개관합니다. 지난해 타계한 고인의 꿈과 열정, 도전정신을 담고 있는 곳입니다. 현장 의료 활동을 펼치고 있는 저로서는 그의 파란만장한 삶에서 ‘연어’의 일생이 떠올랐습니다. 1941년 갓 스무 살 청년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혹독했던 일제 식민지 시절이지만 넓은 세상으로 가보자는 포부에서였습니다. 송사리 같은 새끼 연어가 대양으로 나가듯 말이죠.

멸시의 대상이었던 조선인 젊은이는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습니다. 주경야독 끝에 일본 와세다대 졸업장을 움켜쥐었습니다. 이후 그는 생존을 위해 일본 곳곳을 미친 듯 쏘다녔고, 천신만고 끝에 추잉껌을 내놓으면서 일본열도를 롯데 껌으로 뒤덮었습니다. 일본으로 향하는 부관연락선을 탄 지 10여 년, 약관의 청년은 어느덧 33세의 기업인이 되어 초콜릿, 아이스크림, 제과 사업으로 거침없이 뻗어나갔습니다.

일본 사업은 날개를 달았지만 그는 늘 허전했습니다. 가난에 찌든 고향을, 근대화를 위해 몸부림치는 고국을 잊을 수가 없었죠. 도울 길이 없어 전전긍긍했지만 1965년 한일 양국이 국교를 맺자 일본에서 번 자금을 아낌없이 모국에 쏟아부었습니다. 주위의 만류도, 일본 정부의 감시도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롯데가 한국에서 사업을 시작한 지 반세기가 넘었습니다. 이제는 그룹의 본거지가 한국이 되었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우뚝 섰습니다. 껌에서 시작해 제과로, 식품으로, 유통으로, 건설로, 화학으로 세계를 누비고 있습니다. 1g짜리 새끼 연어가 망망대해로 나가 포식자와 기후변화, 해류의 급변을 이겨내고 어른 팔뚝만 한 성어로 자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연어를 닮은 점이 또 있습니다. 태어난 곳을 잊지 못해 모천(母川)으로 돌아오는 연어처럼 그는 고국을 잊지 못했습니다.

이런 질문들을 해봅니다. 고인이 모국으로 돌아온 지 50년 동안 롯데에서 생계를 꾸린 직원 수는 얼마나 될까. 그 돈으로 공부한 학생은 몇 명이나 될까. 세계 각국의 사업장에서 한국으로 보낸 외화는 얼마나 될까. 50년 동안 세금은 얼마나 냈을까.

조국 근대화를 이끈 창업주들이 하나둘 떠나갑니다. 1일 개관하는 ‘상전(象殿) 신격호 기념관’에서 삶의 끝자락까지 고향 산천을, 모국을 사랑했던 신격호 명예회장을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습니다.


권성원 차의과학대학 석좌교수


#신격호 기념관#애국적 기업#기업가 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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