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의료기기 스타트업, 보험 적용 - 의사 선택 관문까지 뚫어야 성공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0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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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규제 통과는 시작에 불과… 가성비 뛰어나야 보험 수가 혜택
의사 부담 줄여주는 것도 관건… 의료 시스템 전체 세밀히 살펴야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의 스타트업들에 자문 활동을 하면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관련 법률 때문에, 혹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나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빡빡한 규제 때문에 사업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는 반만 맞고 반은 틀리다. 사실 정부 규제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 겪을 어려움의 절반도 안 된다. 헬스케어 산업은 제품을 쓰는 주체(소비자)와 제품 사용을 결정하는 주체(의사)와 제품에 돈을 대는 주체(보험)가 각각 다르다. 정부의 규제를 통과했다 하더라도 이 세 주체를 모두 만족시켜야만 자리를 잡을 수 있다.

인공지능(AI) 의료영상 기기의 보험 적용 사례는 이런 점을 잘 보여준다. AI를 이용해 영상을 판독하는 장비 상당수가 FDA로부터 의료기기 인증을 받지만, 보험 수가까지 적용받은 경우는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대부분의 AI 영상 장비는 자기공명영상(MRI) 등의 판독 정확도를 높여준다는 가치를 내세우지만 이렇게 작은 변화를 알아낸 것만으로 환자가 꼭 실질적인 도움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어려운 관문을 뚫은 사례가 있다. ‘하트플로 FFRCT’라는 AI 분석 시스템은 미국, 영국, 일본에서 임시 보험 수가를 적용받는다. 어떻게 했을까? 협심증 환자는 관상동맥 조영술이라는 검사를 통해 확진 판정을 받게 된다. 관상동맥 조영술은 위험성이 있고 입원까지 필요한 경우가 있어 비용이 많이 드는데, 하트플로 FFRCT는 컴퓨터단층촬영(CT) 결과를 AI로 분석해서 비싸고 위험한 조영술이 굳이 필요 없는 환자를 선별해 준다. 따라서 그 비용 효율성을 인정하기 쉽다. 즉, 이 장비는 보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집중했기 때문에 보험 수가를 적용받은 것이다.

정부 규제를 통과하고 건강보험까지 적용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는 의사가 해당 제품을 환자에게 처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를 관리하는 과정에 들어가는 노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많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들은 환자에 대해 과거보다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이는 부담이 된다. 과거에 보지 않았던 데이터까지 추가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많은 의사들은 안 그래도 바쁜 삶이 더 바빠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따라서 디지털 헬스케어 분야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의사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이와 같이, 디지털 헬스케어 회사들은 실제 의료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깊이 이해해야 한다. 단순히 ‘병원에서 이런 게 있으면 좋겠다’는 식의 아이디어만으로는 부족하다. 규제기관부터 보험과 의사, 환자에 이르는 전체 의료 시스템을 세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다른 많은 산업과 마찬가지로, 규제 통과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의 최종 목표가 아니다. ‘더 높은 기준에 부합하는 더 나은 제품’을 만드는 긴 과정의 시작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김치원 서울와이즈재활요양병원 원장
카카오벤처스 라이프사이언스 자문역
doc4doc2011@gmail.com
#의료기기#스타트업#보험#적용#정부 규제#보험 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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