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부진에 지갑 닫았다…비정상적 저물가에 디플레 우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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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년 12월 31일 14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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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 News1
서울시내의 한 대형마트를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고 있다. © News1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역대 최저 수준인 0.4%를 기록했다. 정부의 물가안정목표치인 2.0%를 한참 밑도는 수준으로 디플레이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이 같은 저물가의 원인을 농산물·석유류 가격 하락과 정부 정책 등 공급 충격으로 보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경기부진에 따른 수요 위축이 물가상승률을 낮췄다고 지적했다. 경제가 활력을 되찾지 못하면 수요 부진에 의한 저물가 현상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이 31일 발표한 ‘2019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지수는 104.85로 전년 대비 0.4% 상승했다.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관련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1965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물가안정목표치에 한참 못미친다. 연간 물가상승률이 0%대에 머무른 건 지난 1999년(0.8%), 2015년(0.7%)과 올해뿐이다.

이처럼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낮아진 데는 석유류·농축수산물 가격 하락과 복지 정책으로 인한 서비스 물가 하락 등 공급측 요인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올해 농축수산물 물가는 양호한 기상 여건으로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전년 대비 1.7% 하락했다. 특히 채소류 가격은 8.5%나 낮아졌다.

농축수산물의 소비자물가 상승 기여도는 마이너스(-) 0.13%포인트(p)였으며 이 중 농산물만 놓고 보면 물가상승률 기여도는 -0.21%p로 조사됐다.

석유류 또한 국제유가 하락 영향으로 전년 대비 5.7% 하락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26%p 떨어뜨렸다.

무상교육이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등 정부 정책이 반영된 공공서비스 물가는 전년 대비 0.5% 하락했으며 소비자물가를 0.07%p 낮춘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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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 기여도만 놓고 보면 의료비·교육비에 대한 복지정책 확대 및 유류세 인하가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0.24%p 낮췄다.

이 같은 이유로 정부는 공급측 하방압력이 물가 수준을 낮췄다고 분석했다.

반면 전문가들은 낮은 물가 수준을 공급측 요인으로만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올해 물가상승률이 유독 낮지만 최근 소비자물가 추이를 보면 저물가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013년(1.3%) 1%대로 떨어진 이후 메르스(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로 소비가 위축된 2015년 0.7%를 기록한 바 있다. 이후 2016~2018년 1%대 상승률을 유지하던 소비자물가는 올해 0.4%로 대폭 낮아졌다.

기초적인 물가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 상승률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점도 수요 위축에 따른 저물가 현상을 뒷받침한다.

올해 농산물및석유류제외지수는 전년 대비 0.9% 상승하며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0.3%) 이후 가장 낮았다.식료품및에너지제외지수 또한 0.7% 상승하는 데 그치며 -0.2% 상승률을 기록한 1999년 이후 최저 수준이었다.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동시에 경제 성장까지 둔화하면서 수요가 물가 수준을 견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성장률이 둔화하고 총수요 부족으로 경제 활력이 떨어지면서 물건을 사는 사람이 줄었다. 이로 인해 물가상승률이 낮아졌다”며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지만 경제가 회복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년에도 물가는 낮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품목성질별 물가지수를 보면 올해 석유류를 제외한 공업제품 물가상승률은 0.7%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 중 내구재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0.2%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도 0.0%로 보합을 나타냈다.

외식 물가는 올해 1.9%의 상승률을 보였지만 2015~2018년 사이 상승률(2~3%)과 비교하면 상승폭이 대폭 축소됐다. 외식을 제외한 개인서비스 물가 또한 2016~2018년까지 2%대 상승률을 유지하다 올해 1.8%로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내년 소비자물가 수준이 올해보다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저물가 기조를 벗어나기는 어렵다고 전망했다. 내년에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2.5~2.6%)을 밑돌 것으로 예상돼 수요측 물가 상승 압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 상황을 디플레이션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경제성장률과 실물지표 부진도 동반되고 있어 경계는 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도 “수요가 물가 상승을 견인하지 못하다 보니 저물가 현상이 나타났다. 내년 경제성장률이 올해보다 개선되겠지만 전반적인 추세로 보면 하락하고 있다”며 “경기 반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 요인보다 하방 압력이 더 클 수 있고, 이로 인해 저물가 상태가 지속된다면 디플레이션에 빠질 위험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경제성장과 실물지표가 부진한 상황에서 0.4%의 물가상승률은 디플레이션에 가까워진 것으로 봐야 한다”며 “물가 수준이 물가안정목표치에서 상당히 심각한 수준으로 이탈했다. 수요 부진이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고 했다.

(세종=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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