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들 ‘CVC 날개’로 훨훨… 한국선 규제 묶여 맴맴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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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 자회사 ‘벤처스’ 활용해 스타트업 70여곳 상대 투자 쇼핑
외부자금 끌어오고 전략적 투자… 작년 글로벌 CVC 47%나 증가
한국 기업, 금산분리에 발목 잡혀


구글 지주사 알파벳의 자회사인 구글벤처스는 지난 한 해 동안 헬스케어 스타트업인 ‘알렉터’와 ‘컬렉티브헬스’, 전기스쿠터 공유업체 ‘라임’, 데이터 관리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예스웨어’ 등 70여 곳의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될성부른 스타트업’의 지분을 마치 쇼핑하듯 사들인 것이다.

글로벌 벤처투자 시장에서 구글벤처스처럼 대기업이 설립한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들이 주연으로 떠올랐다. 11일 미국 시장조사업체 CB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CVC의 투자 규모는 지난해 530억 달러(약 60조4200억 원)로 전년 대비 47% 증가했다. 전체 벤처캐피털(VC) 투자에서 CVC 비중도 23%로 5년 만에 7%포인트 늘어났다. 미국에 이어 중국, 일본의 CVC들도 자금 규모를 빠르게 확대하며 ‘투자 쇼핑’ 경쟁에 뛰어들고 있지만 다수의 한국 기업은 금산분리 규제에 발이 묶여 CVC를 설립하는 것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반 VC가 수익률을 추구하는 재무적 투자자라면 CVC는 모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고려한 전략적 투자를 하는 게 특징이다. 박정호 KDI 전문연구원은 “CVC는 투자 대상 기업의 사업 성장성뿐만 아니라 중장기적인 협업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대기업 입장에서 CVC를 통한 투자는 섣부른 인수합병(M&A)이나 자체 기술 개발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꼽힌다. 투자를 받는 스타트업 입장에서도 이점이 있다. CVC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시장을 발굴하고 대량생산을 통한 지속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CVC 투자가 가장 활발한 곳은 미국이지만 중국과 일본 CVC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지난해 가장 투자 활동이 활발했던 CVC 10곳 중 4곳은 미국계, 3곳은 중국계로 집계됐다. 구글벤처스와 세일즈포스벤처스, 인텔캐피털 등 미 정보기술(IT) 기업 CVC가 1∼3위를 차지했고 중국 바이두의 바이두벤처스, 레노버의 레전드캐피털이 4, 5위로 스타트업 투자계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일본도 SBI홀딩스의 SBI인베스트먼트가 6위에 이름을 올렸다. 소프트뱅크가 주도해 2017년 조성한 1000억 달러 규모의 ‘비전펀드’ 역시 새로운 방식의 CVC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에선 금산분리 규제 때문에 지주사 체제인 SK, LG 등 주요 기업들의 CVC 설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지주사 체제가 아닌 삼성, 한화, 카카오 등 대기업과 일부 금융회사가 CVC를 운영하고 있지만 글로벌 투자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진 못하고 있다. 올해 초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 마련 당시 재계는 지주사의 CVC 설립 허용을 꾸준히 요청했지만 “금산분리 원칙을 깰 수 없다”는 정부의 입장을 바꾸지 못했다.

CVC가 없는 지주회사는 공정거래법상 스타트업 투자 시 지분 40% 이상을 확보해 자회사로 보유하거나 5% 미만의 지분 투자만 허용된다. 유정주 한국경제연구원 기업혁신팀장은 “국내 지주사 체제 대기업은 규제 때문에 외부 자금 조달을 할 수 없고 전략적 투자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CVC를 보유한 기업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할 경우 이를 없애야 하는 문제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최근 ‘투자 중심 벤처금융’을 내세우면서 이를 위한 핵심 수단인 CVC는 여전히 허용하지 않는 건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황태호 기자 taeho@donga.com
#구글벤처스#cvc#금산분리 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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