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만으론 글로벌경쟁 한계… 세계 3위 ‘다자 방패’로 돌파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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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CPTPP 가입 적극 추진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3일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 검토를 공언한 것은 미국발 보호무역주의가 장기화하는 상황에서 자유무역 기조를 유지하기 위한 돌파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실제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하는 가운데 기업의 경쟁력을 지키려면 다자 간 무역협정에 조기 가입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반면 CPTPP 가입으로 대일(對日) 무역적자가 확대되면서 제조업 분야가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한국 수출의 23% 차지하는 세계 3위 경제블록

CPTPP 11개 회원국은 인구 5억 명에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3.5%를 차지한다. GDP 기준 세계 3위에 해당하는 거대 경제 블록이다. 이 국가들이 한국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3.3%이고 한국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6.2%에 이른다. 당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으로 추진됐지만 올 1월 미국이 탈퇴하면서 CPTPP로 이름을 바꿔 내년 상반기에 정식 발효될 예정이다.

그동안 한국은 미국의 참여 여부를 중시해 왔지만 최근 미국의 행보보다는 CPTPP 자체의 실익을 따져 가입 여부를 결정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이 다자협정에 부정적인 데다 미일 양국 간 무역협상이 시작되면서 미국이 CPTPP에 조기 가입할 가능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김현종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도 최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가입하지 않은 TPP에 입장료를 얼마나 내고 가입해야 할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태도를 바꾼 배경에는 미중 무역갈등으로 글로벌 시장이 급격히 블록화하는 가운데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만으로 경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이 있다.

현재 CPTPP에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글로벌 기업이 중간재를 수출해 조립한 뒤 다른 나라로 다시 수출하는 국가들이 다수 가입돼 있다. 예를 들어 일본 기업이 베트남에서 제품을 생산하면 지금보다 크게 낮은 관세나 무관세로 수출이 가능해져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 인건비 상승과 미중 무역전쟁으로 ‘세계의 공장’ 중국의 강점이 점점 사라지는 상황에서 이 국가들과 생산망을 연계하는 것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 농수산물-섬유는 호재, 자동차에는 타격 우려

현재 CPTPP 가입국 중 한국과 FTA를 맺지 않은 나라는 일본과 멕시코뿐이다. 이 때문에 CPTPP 가입을 사실상의 한일 FTA 체결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실제 2017년 대일 무역적자가 166억6000만 달러에 이르고, 매년 적자 규모도 커지는 상황에서 CPTPP 가입은 적자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올 8, 9월 1047개 회원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기업들은 CPTPP 가입으로 핵심 소재 부품의 일본 의존도가 높아지고, 국내 시장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달 10일 CPTPP 토론회에 참여한 박천일 무역협회 통상지원단장은 “CPTPP 가입 시 농수산물과 섬유제품은 대일 수출이 증가하고 자동차, 기계 등 제조업 분야 일부 품목은 대일 수입이 증가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자동차, 로봇, 첨단 소재 등에서 일본과의 경쟁이 격화돼 국내 산업 발전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 “미국보다 CPTPP 먼저 가입해야 유리”

이런 우려에도 미국이 태도를 바꿔 CPTPP에 가입하기 전에 한국이 먼저 가입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TPP 추진 당시 저작권 70년 보장, 바이오 의약품 데이터에 대한 보호 강화 등 한국이 받아들이기 까다로운 조항들을 주장했다. 하지만 이 조항들은 CPTPP로 바뀌면서 상당수 보류됐다. 한국이 먼저 가입해야 추후 미국이 이 같은 요건을 되살릴 것을 요구할 때 협상력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박태호 서울대 명예교수(전 통상교섭본부장)는 “미국이 가입하지 않아 상대적으로 규모가 축소된 CPTPP에는 한국처럼 국제 무역 규모가 큰 가입국이 추가로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미국보다 먼저 가입해야 더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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