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에서 벗어나면 불법”… 산업용 고속드론 테스트도 못할 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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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 공화국엔 미래가 없다]<5> 겉도는 드론 규제완화


“2년간 드론 시험비행을 100번 넘게 했지만 불법이 아닌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드론측량업체 그리니치코리아의 서정헌 대표(64)는 육군사관학교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지형분석실장 등을 지낸 지도 및 지리정보시스템(GIS) 전문가다. 중령으로 예편한 후 2004년 국내 최초로 헬기에 라이다(레이저 레이더)를 실어 지도를 제작했다. 아프리카 말라위, 탄자니아 등지의 지도 제작과 검수 용역을 맡았다가 드론 측량 사업과 인연을 맺었다. 정밀 지도가 없는 아프리카의 광활한 토지를 매핑(지도 제작)하는 데 드론이 요긴하게 쓰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난관이었다. 국내에서 주로 쓰는 회전익 드론(헬기 모양) 배터리는 20∼30분 비행하면 방전됐다. 소규모 측량에는 문제없지만 수백∼수천 km 대단위 면적을 매핑하려면 그보다 4∼5배는 오래 날아야 했다. 1년간 탐색 끝에 캐나다에서 고정익 드론(비행기 모양)을 들여왔지만 테스트 장소가 문제였다.

국내 항공안전법은 ‘비가시권 비행’(조종자의 시야 범위를 넘어 안 보이는 상태로 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예외를 인정받으려면 별도 승인이 필요하다. 서 대표가 들여온 드론은 속도가 시속 60∼100km에 달해 비행 때 눈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매번 승인을 받아야 했다.

시험비행할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현행법에 따르면 비행장 등 주요 시설물 반경 9.3km 이내에서 드론을 날리려면 사전 허가가 필요하다. 서울의 경우 한강 이북에 주요 시설이 밀집해 있고 이남은 공항 관제권으로 인해 곳곳이 비행금지구역이다. 시험비행 때마다 비행구역을 일일이 확인하고 지방항공청과 국방부 등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데 보통 5∼7일이 걸린다. 비행 규제가 없는 시범공역은 전국에 단 10곳으로 수도권에는 경기 화성이 유일하다. 결국 불법을 감수하고 시험비행을 강행했다.

서 대표는 “배터리와 모터 등 제품을 테스트하기 위한 비행은 수십 번 해도 모자란데 그때마다 승인을 받는 건 사실상 기술개발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중소업체 입장에서 드론비행장까지의 장비 운반비와 왕복 교통비도 무시 못 한다”고 푸념했다.

○ 산업육성책 못 따라가는 엇박자 제도 정비

드론 측량은 드론 관련 서비스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 중 하나다. 드론을 이용하면 기존 유인항공기를 활용할 때보다 측량기간을 5배 이상 단축할 수 있다. 저고도 비행을 하면 기상 영향을 적게 받아 신속하게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체 유지관리 등 비용도 절반이나 줄일 수 있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연간 1650억 원 규모의 국내 공공측량 시장 중 17%(283억 원)가 드론 측량으로 전환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이를 위한 법제는 이제 걸음마 단계다. 1년 전까지 국내 드론 측량은 아무 규정도 없는 무법지대였다. 그 상태에서 정부가 불쑥 지난해 12월 ‘드론산업발전 기본계획’을 발표하며 2026년까지 산업 규모 4조4000억 원, 기술경쟁력 세계 5위 등 청사진을 제시했다. 하지만 청사진에 걸맞은 제도 정비의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육성책 발표 후 올 3월에야 뒤늦게 ‘무인비행장치 이용 공공측량 작업지침’이 나왔고 공공측량 성과 심사 통과는 8월에 이뤄졌다. 그동안 드론 측량 자료는 공식 자료로 쓰이지 못하고 지적도와 비교하는 데 참고자료로 사용되는 것에 그쳤다.

제도 정비가 지체되는 동안 경쟁국과의 기술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2016년부터 건설현장에서 드론 사용을 의무화하는 ‘아이 컨스트럭션’ 제도를 운영하며 라이다를 이용한 3차원(3D) 측량 기술까지 상용화했다. 중국은 2014년 마을 측량, 2016년부터 불법용지 및 건축물 관리에 드론을 사용하고 있다. 국내 드론 측량 정밀도는 5.9cm이지만 일본은 3cm 수준으로 두 배나 차이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 품셈표-유지보수 체계 마련도 숙제

드론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시스템 개선도 갈 길이 멀다. 드론 측량 업계의 숙원인 품셈(공정별 대가 기준) 정비는 2년째 제자리걸음이다. 현재는 표준 작업품셈 없이 지역마다 각각 드론 용역비용이 다르다. 영세업체들 간 유혈 경쟁도 벌어지고 있지만 관련 규정은 2020년에야 나올 예정이다. 서 대표는 “용역 대가로 km²당 1000만 원을 부르는 곳도 있고 300만∼400만 원을 제시하는 업체도 있다. 관련 종사자 보호와 양질의 성과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품셈기준을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표준 체계와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 시중에서 쓰는 드론은 비행 중 배터리가 방전될 경우 회수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소모품’으로 전락한다. 배터리가 얼마 남았는지 정교하게 기록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기체 및 배터리 제조사 간 정보를 연동할 수 있는 제어 시스템의 표준화가 안 돼 있다. 성능 유지보수 업체 규모 역시 공공 수요가 한정적이다 보니 대부분 영세하다. 수백 대의 드론을 운용하는 군조차 인력 부족으로 군수 지원에 어려움을 겪는 실정이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드론#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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