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근무 5급 꿀보직 공무원 노려라”… 立試 몰려드는 인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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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경쟁률 275 대 1 ‘입법고시 열풍’


‘웰빙 공무원’, ‘국회의원 따까리’(잔심부름 하는 사람을 일컫는 속어).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국회 공무원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처럼 부정적이었다. 국회 공무원의 존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고위 공직자의 대명사인 판검사 배출 통로였던 사법시험이 폐지된 후 국회에 근무할 5급 공무원을 공개 채용하는 입법고시는 ‘고시 중의 고시’로 위상이 크게 높아졌다.

한 해 선발 인원이 10여 명에 불과한 ‘바늘구멍’인 까닭에 입법고시는 경쟁률이 200 대 1 이상으로 치솟곤 한다. 이처럼 극강의 난도를 자랑하지만 ‘민의의 전당’에서 일한다는 자부심과 다른 행정부처와 달리 서울에서 평생 근무할 수 있다는 확실한 장점이 있어 입법고시로 입문하는 수험생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 극강의 난도 ‘고시 중의 고시’

‘입시’라고 줄여 부르는 입법고시는 국회 사무처에서 실시하는 입법부 일반직 5급 공무원 공채시험이다. 1976년 처음 실시된 입시는 올해로 34회째를 맞았다. 총 15명을 뽑는 올해 시험에 원서를 낸 사람은 무려 4131명. 3월 3일 치른 1차 시험에 실제로 응시한 사람도 3426명에 이른다. 국가공무원 5급 행정직 공채시험(행정고시) 경쟁률이 평균 40 대 1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높은 경쟁률이다.

현존하는 각종 공무원 시험 중 경쟁률과 난도 모두 가장 높은 수준인 입시는 다른 고시에 비해 대중적으로는 덜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입법기관인 국회에서 이뤄지는 대부분의 일이 입법고시 출신 공무원들의 손을 거친다는 점에서 합격자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고 할 수 있다. 행정고시와 입법고시를 모두 합격한 공무원 A 씨는 “과거에는 고시 2관왕들이 행정고시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0년 전쯤부터는 합격자 대부분이 국회로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입시의 첫 번째 관문은 공직적격성시험(PSAT)이다. 일반행정직과 재경직은 행정고시와 시험 방식이나 범위가 같다. 하지만 매우 적은 인원을 선발하는 시험 특성상, 이른바 ‘불의타(不意打·예상치 못한 고난도 문제)’가 많고 커트라인이 매우 높다. 이 때문에 입법고시 수험생들은 대부분 행정고시를 함께 준비하곤 한다. 올해처럼 입법고시가 행정고시보다 먼저 치러지는 해에는 행정고시 수험생들이 입법고시를 ‘모의고사’ 삼아 응시하는 경우도 있어 경쟁률이 더 높다.

대부분의 응시자는 이 1차 시험에서 탈락한다. 직렬별로 수십 명 수준인 1차 통과자들은 2차 논술형 필기시험을 치르고 이마저 통과하면 3차 최종면접에 가게 된다. 합격자는 국회 사무처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에서 근무하게 된다. 국회나 정부에서 발의된 법안과 예결산안은 모두 이들의 손을 거친다. 국회 도서관에서 근무하는 ‘사서직’은 공석이 생길 경우에만 뽑는다.

○ ‘통법부’는 옛날 얘기… ‘제너럴리스트’ 꿈꿔

입법고시의 가장 큰 매력은 “서울 근무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부 부처가 세종시로 옮겨갔고, 공공기관도 지방으로 이전하고 있지만 국회는 서울 여의도에 굳건히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A 씨는 “국회 세종시 분원 설치가 확정되면 일부 부서가 옮겨갈 수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하지만 아직은 다들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도 입법고시의 매력이다. 국회 사무처에서 공보 업무를 담당하는 김명준 사무관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놓고, 각계각층의 이해관계가 모이고 충돌하는 국회에서 여러 부서를 거치다 보면 다방면의 지식과 경험을 쌓을 수 있다”고 말했다.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이 ‘스페셜리스트’로 성장한다면, 입법고시 출신은 ‘제너럴리스트’의 길을 걷는 셈이다.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영혼이 있는’ 공무원으로 살 수 있다는 점도 입법고시의 매력이다. 입법고시 31회 출신인 B 씨는 “행정부는 정권이 바뀌면 업무 방향 자체가 흔들리지 않느냐. 우리 일은 어느 한쪽 눈치도 보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듣고 객관적인 보고서를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회 공무원의 업무가 대부분 ‘지원’과 ‘검토’로 끝난다는 점은 한계로 꼽힌다. 행정부처 공무원은 직접 사업을 기획, 집행할 수 있지만 국회에서는 그런 적극적인 업무를 하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일 욕심’이 많은 이들은 입법고시보다 행정고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입법고시 23회 출신 공무원 C 씨는 “남들이 가져온 걸 검토하는 일만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아쉬울 때”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가 ‘통법부’(법을 그냥 통과시키는 곳)라는 비아냥거림을 듣던 과거와 달리 실질적 권력을 가진 기관으로 변모하면서 입법고시의 인기는 더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A 씨는 “옛 선배들은 (국회가 문을 닫는 날이 많아) ‘한 달 놀고 한 달 일하는 낭만이 있었다’고 하지만 그건 다 지난 이야기”라고 말했다. 국회의원들의 법안 발의 건수가 늘고 언론의 감시 기능도 높아지면서 업무 강도가 함께 높아졌다는 것이다. 국회 위상이 높아지면서 최근에는 대형 로펌 가운데 입법고시 출신을 채용하려는 곳도 늘고 있다.

올해 입법고시의 마지막 관문인 3차 면접시험은 10∼11일 치러지며 최종 합격자는 13일 발표된다.

홍정수 기자 hong@donga.com
#입법고시#공무원#국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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