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잘 버는 손자회사’의 고민… 지분율 규제에 기업인수 발목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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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 SK브로드밴드, LG디스플레이, GS칼텍스, CJ대한통운….

이들 기업의 공통점은 뭘까. 첫째로 대기업 그룹의 ‘손자회사’라는 점이다. 각 그룹 지주사의 자회사로 있는 SK텔레콤, LG전자, GS에너지, CJ제일제당을 최대주주로 두고 있다. 두 번째는 요즘 잘나간다는 점. 반도체 슈퍼사이클(초장기 호황)과 디스플레이 호황에 올라탄 SK하이닉스와 LG디스플레이는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기업들도 지난해나 올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했거나 할 것으로 보인다. ‘돈 잘 버는 손자회사’들인 셈이다.

이들 업체는 호실적을 바탕으로 현금을 확보하며 인수합병(M&A)을 위한 투자 여력을 늘려가고 있지만 정작 지주사에 대한 규제가 M&A에 대한 발목을 잡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계적으로 M&A가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한 주요 수단으로 떠오르고 있고 국내에서도 지주사 규제를 받는 손자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손자회사들의 투자 여력을 활용해 M&A를 활성화하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5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12년 대기업 집단에 포함된 44개 손자회사의 매출액은 약 56조8362억 원에서 지난해 약 64조4949억 원으로 13.5% 증가했다. 이들 기업의 자산총액도 같은 기간 61조9013억 원에서 76조4852억 원으로 23.6% 늘었다. 손자회사들의 역할이 늘고 덩치도 커진 셈이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지주회사체제 내의 위치 때문에 M&A에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지주회사의 지분을 규제하고 있는데, 손자회사가 자회사를 두려면 지분을 100% 가져야 한다. 지분을 모두 가지든가, 그러지 못하면 매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실제로 대기업 집단에 속한 회사와 그 밖에 있는 비계열사 간의 M&A 건수는 2014년 160건에 이르렀지만 2015년 93건, 지난해 76건으로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이런 규제가 국내 업체에만 적용될 뿐 외국 업체에는 적용되지 않는 역차별 문제도 있다. SK하이닉스는 미국 베인캐피털 등과 ‘한미일 연합’을 결성해 일본 도시바(東芝)메모리 인수전에 참여했는데, 1290억 엔(약 1조2432억 원)어치의 전환사채를 통해 향후 지분을 15%까지 확보할 수 있는 길을 열어뒀다. 하지만 만약 상대가 국내 업체였다면 지분을 일부만 보유하는 식의 투자는 할 수 없다.

LG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LG디스플레이는 중국 광저우(廣州)에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증손회사인 중국 광저우법인을 따로 설립해 LG디스플레이가 전체 투자금의 70%를, 중국 지방정부와 업체가 30%를 대는 식인데 만약 국내에 법인을 설립하려면 LG디스플레이가 투자금을 모두 대야 한다. 2010년 SK가 의료장비업체 메디슨(현 삼성메디슨) 인수를 포기하거나 CJ가 대한통운을 인수할 당시 대한통운의 자회사를 굳이 매각해야 했던 것도 지주회사 지분 규제 때문이었다.

재계에서는 그룹 지배구조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벤처기업과 스타트업에 한해서라도 지주회사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구글, 아마존 등 미국 5대 정보기술(IT) 기업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420개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월마트와 GE 등 전통 기업도 스타트업 M&A를 통해 혁신 역량을 높이고 있다.

이처럼 되기 위해선 지분 규제와 함께 지주회사는 벤처캐피털을 보유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도 완화가 필요하다. 현재 지주회사는 금산분리 규제에 따라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을 보유할 수 없게 돼 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단순 금융업으로 보지 말고 기업의 혁신 수단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GE의 경우 벤처캐피털 자회사인 GE벤처스가 2013년 창업 이래 100군데 넘는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해 오고 있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대기업의 M&A 시장 참여는 침체된 국내 벤처기업 M&A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 ::

(CVC·Corporate Venture Capital)

기업이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발굴 투자하기 위해 설립하는 조직 또는 회사로, 모기업과 스타트업 간 새로운 기술 발굴과 사업 협력, 향후 인수합병 등을 진행하기에 유리하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대기업#손자회사#지배구조#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규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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