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한강변을 보면 ‘한국 도시개발史’가 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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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나루를 오가는 나룻배들은 과일과 채소, 그리고 한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가득 싣고 있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개포동, 일원동 일대의 주민들이 서울 시내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은 지금의 타워팰리스 부근 양재천변에서 ‘엔진배’를 타고 탄천을 따라 올라가 뚝섬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강남의 탄생’ (한종수 강희용·미지북스·2016년)

 객차와 객차 사이 통로까지 붐비는 귀경 열차에서 사람들에 끼여 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귀가 전쟁은 서울에 들어서는 순간 시작된다. 집까지 가려면 강변북로나 올림픽대로를 지나야 한다. 지옥 같은 차량 정체를 어떻게 뚫고 갈 것인지 걱정부터 앞선다.

 그런 점에서 서울은 실패한 도시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강을 왕복 10차로 도로 사이에 가둬 놓았다. 사람들은 강변에서 평안을 찾기는커녕 운전대를 잡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을 벌인다. 풀릴 줄 모르는 교통 체증과 다리 하나를 지날 때마다 끊임없이 합류하고 드는 차들의 행렬. 반짝이는 한강에 눈길 한 번 줄 틈이 없다.

 나들이객에게도 한강은 그다지 상냥하지 않다. 차도에서 10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강변 공원에는 경적 소리와 매연이 범람한다. 프랑스 파리 센 강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된 반면, 서울 한강은 신경질적이며 때로는 생명까지도 위협하는 공간이 됐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한강에는 나룻배가 다녔다. 본격적인 자동차 시대를 연 한남대교가 개통되기 전, 강남 개포동과 일원동 일대에서 난 싱싱한 과일과 채소는 당시 서울(강북) 사람들에게 인기였다. 잠원동에서는 무 농사가 잘됐고 서초동에서는 화초를 키웠다. 압구정동은 과수원골이었고 도곡동에서는 도라지가 자랐다. 농부들은 정성껏 기른 농산물을 배에 싣고 한강 나루를 오갔다. 한강은 이곳 사람들의 삶을 싣고 흐르는 푸근한 곳이었다.

 지금의 한강변은 사람보다 기계를 우선시하면서 난개발 된 서울의 축소판이다. 무한경쟁 궤도 위에서 기자 역시 남보다 조금이라도 먼저 가려고 차간 거리를 좁혔다. 아스팔트에 갇히기 전 서울 모습은 어땠을까. 누군가의 기억으로만 전해지는 사람 냄새나는 서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더 안타깝다.

손가인 기자 gain@donga.com
#한강#도시#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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