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식 특허 끼워 팔고… 스마트폰 가격 5% ‘퀄컴稅’로 떼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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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퀄컴에 1조원대 과징금

 퀄컴은 이동통신 원천기술(표준필수특허·SEP)을 무기로 휴대전화 제조업체로부터 스마트폰 가격의 5%에 달하는 특허사용료를 받는다. 이른바 ‘퀄컴세(稅)’이다. 퀄컴이 자사 제품인 칩셋(메인보드, 그래픽 카드 등을 통합 및 제어하는 장치)이 아닌 스마트폰 값을 기준으로 특허사용료를 받는 것은 시장 지배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 하지만 28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에 시정명령을 내리면서 특허권을 앞세운 퀄컴의 갑질은 사실상 중단될 상황에 놓였다.
○ 특허 갑질로 성장한 퀄컴

 
1985년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출범한 퀄컴은 1990년대 초반 한국전자통신연구원과 함께 개발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통신기술로 세계적 기업으로 도약했다. 한국은 1996년 세계 최초로 CDMA를 상용화하며 퀄컴 성장에 큰 힘을 실어줬다. 이후 퀄컴은 세계 통신시장을 지배하는 기업으로 성장했고,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기업을 상대로 갑질을 일삼았다.

 퀄컴은 휴대전화 제조사들과 특허권 사용계약을 맺을 때나 제조사들이 계약 내용을 따르지 않을 때마다 칩셋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이 때문에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은 불리한 특허권 사용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퀄컴은 4세대(G) 기술이 보편화된 요즘도 이미 구식이 된 2G, 3G를 포함한 모든 보유 특허를 묶어 판매하는 ‘끼워 팔기’도 서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다. 퀄컴은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이 보유한 특허권을 공짜로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이들의 특허권을 다른 고객회사에 무료로 제공하면서 자사 제품의 ‘몸값’을 높이기도 했다. 인텔, 비아 등 경쟁 칩셋 제조회사에는 특허권을 빌려주지 않는 식으로 견제했다.

 이런 과정에서 ‘칩셋 경쟁업체 경쟁력 약화→퀄컴 시장점유율 확대→높은 점유율을 토대로 한 일방적 계약 체결과 상대 특허 무료 사용→시장점유율 확대와 제품 경쟁력 강화’라는 퀄컴식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졌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국내 휴대전화 제조회사들은 이번 공정위 결정으로 퀄컴과의 불균형 관계가 회복되길 기대하고 있다.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한 관계자는 “퀄컴의 부당한 요구에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매번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관계와 관행이 개선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퀄컴 특허료가 낮아질 가능성이 있고, 그만큼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들에는 원가 절감 요인이 생겼다. 하지만 당장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혜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칩셋 제조사와 계약을 맺더라도 특허권 사용료는 내야 하는 만큼 소비자가 느끼는 가격 하락 폭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 결사 항전을 선포한 퀄컴

 사상 최대 규모의 과징금을 부과 받게 된 퀄컴은 “공정위 판단은 사실과 전혀 다를 뿐 아니라 현실을 무시한 결정”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돈 로젠버그 퀄컴 총괄부사장은 “퀄컴은 모바일 기술에 대한 대규모 투자로 획득한 특허를 통해 한국 및 전 세계 모바일 통신업계의 성장과 소비자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경쟁을 촉진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퀄컴의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통해 모바일업계가 글로벌 리더로 성장하는 윈윈 관계를 무시한 처사”라고 강조했다.

 퀄컴은 또 △공정위의 경쟁법 위반 판단 논리가 일관되지 않고 △경쟁 제한에 대한 증거가 없을 뿐 아니라 △증거에 대한 완전한 접근권 등 미국 기업에 보장된 절차상 보호 조치도 적용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로젠버그 총괄부사장은 “우리의 요구와 권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아래 미국 기업에 보장된 것이지만 공정위는 절차적 보호 조치를 준수하지 않았다”고도 했다. 이 같은 발언 때문에 공정위의 이번 조치가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공정위는 이에 대해 전원회의를 5개월 동안 7차례 여는 등 객관적인 증거와 증언으로 확실한 결론을 내렸다고 반박했다. 또 국내의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물론이고 미국 애플과 인텔, 대만 미디어텍 관계자들도 심판정에 불렀던 만큼 공정성은 충분히 확보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애플 본사 임원은 심판정에서 “퀄컴이 칩셋 공급을 무기로 부당한 계약을 강요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세종=박민우 minwoo@donga.com /서동일 기자
#특허#스마트폰#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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