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公試 응시 70만명 돌파… 노량진 학원가 ‘서글픈 호황’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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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시험 열풍 현장 가보니

 28일 오후 1시 서울 동작구 노량진로 한 식당. ‘고시뷔페’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다른 식당 같으면 점심 손님이 거의 빠졌을 시간이지만 이곳은 여전히 붐볐다. 기다리는 줄이 식당 바깥까지 이어질 정도였다.

 손님들은 마치 판박이처럼 간편한 일상복에 슬리퍼를 신고 두꺼운 문제집을 들고 있었다. 대부분 ‘공시족’(공무원을 준비하는 수험생)이다. 이곳의 한 끼 식사비는 ‘월식’(한 달 치를 미리 계산하는 것)을 끊으면 2400원에 불과하다. 식당 관계자는 “식자재 값이 많이 올랐지만 식당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어 큰 어려움은 없다”고 말했다.
○ 공시족 70만 명…수능보다 많아

 
노량진 학원가에선 외환위기 때에 필적한다는 ‘경기 한파’를 좀처럼 체감하기 어렵다. 올해 사상 최다 응시자를 기록한 공무원시험 열풍 때문이다. 28일 인사혁신처와 행정자치부, 서울시 등에 따르면 5급 공채 및 외교관후보자 시험, 국가직 및 지방직 7·9급 등의 응시 인원을 모두 더하면 70만6000여 명(원서 접수자 연인원)에 이른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인원(약 60만 명)을 10만 명 이상 웃도는 숫자다.

 공무원시험 전문학원 관계자는 “결시율과 중복 인원을 감안해도 실제 응시 인원이 50만 명에 육박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시험의 합격자는 3만여 명. 10 대 1이 넘는 경쟁률에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이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30년 넘게 노량진에서 복사점을 운영했다는 김모 씨(65)는 “공무원시험 준비생들이 매년 늘어나면서 주변에 복사점도 계속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다.

 빈자리를 찾기 힘든 인근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는 ‘음료 1잔에 1명이 8시간 이용 가능’이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 있었다. 이곳에서 공부하던 김모 씨(25)는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 같은 처지의 수험생들”이라고 말했다.

 공시족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민간기업의 취업문이 좁아질수록 공무원시험에 더욱 매달리는 분위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7·9급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다 포기한 대졸자의 취업률(2007∼2013년)은 60.0%로, 같은 조건의 비경험자(76.3%)에 비해 16%포인트나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초봉 역시 ‘공시 포기자’는 2696만 원, 비경험자는 2961만 원으로 300만 원 가까운 격차를 보였다.

 공무원시험을 포기하면 다른 경쟁자에 비해 악조건에 몰리기 때문에 더욱 집착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4번의 공무원시험에 응시했다는 2년 차 준비생 박모 씨(28)는 “공무원시험을 준비할수록 민간 기업의 채용 기대치와는 멀어지는 사람이 된다”며 “여건이 허락하는 한 될 때까지 해보는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방대를 휴학하고 서울에서 9급 시험을 준비하는 유모 씨(23)도 “스펙과 상관없이 양질의 직장을 구하는 방법은 공무원밖에 없다”고 말했다.
○ 브레이크 없는 ‘공시 광풍’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공무원 처우가 갈수록 좋아지는 것도 공시족들이 줄지 않는 이유다. 행자부의 공무원 월소득 자료에 따르면 9급 1호봉의 세전 급여는 수당을 포함해 총 2500만 원 수준.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조사한 4년제 대졸자의 대기업 초봉(3490만 원)보다는 적지만 중소기업(2190만 원)보다는 많다. 경기와 무관하게 꾸준히 봉급이 인상되기 때문이다. 최근 인사처는 “물가상승 수준 등을 감안해 정무직을 제외한 공무원의 내년도 급여를 3.5% 인상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내년도 국가직 공무원 공채 선발규모는 6023명으로 올해 5372명보다 12.1% 늘어난다. 전문가들은 ‘공시 광풍(狂風)’이라는 기형적 현상의 근본 해결책으로 민간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 것을 주문한다. 공무원 조직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좁히는 것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병대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불황과 관계없이 임금이 매년 인상되고 안정적이니 구직자들이 몰릴 수밖에 없다”며 “경제 여건이나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해 채용인원 확대나 임금인상을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황태호 taeho@donga.com·강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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