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정경유착이 ‘경제 윤활유’?… 그런 시절 한참 지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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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경유착 등의 부패는 기업들의 공정한 경쟁을 왜곡해 효과를 저하시킨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부에선 부패가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 비효율적인 규제를 피할 수 있도록 돕는다고 주장한다. 즉 부패가 ‘효율적 윤활유’가 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스페인 IE 경영대학원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팀은 최근 부패와 효율성의 상관관계를 검증하기 위해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아니라 선거자금을 많이 제공하는 기업이 정부 조달 사업을 많이 수주한다는 가설을 검증했다.

 뇌물은 법적 처벌을 피하기 위해 은밀하게 제공되기 때문에 부패에 대해 엄밀히 계량연구를 진행하기는 사실상 매우 어렵다.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이 논문은 2005년 러시아 중앙은행에서 유출된 거의 모든 러시아 기업의 은행 거래 자료(1999∼2004년)를 분석했다.

 기업들이 선거자금 제공을 합법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유령회사를 활용하는 것을 ‘터널링’이라고 하는데 분석 결과, 이 현상은 선거기간 중에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됐다. 터널링은 또한 정부 조달 계약을 한 기업들에서 현저하게 높은 빈도로 관찰됐다. 즉, 선거 기간 중에 유령회사들과 은행 거래를 많이 하는 기업들이 정부 조달 계약을 더 많이 획득했다는 얘기다. 이 결과는 터널링의 정치적 주기 뒤에 부패 메커니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한편 부패에는 지역적 편차가 존재했는데, 부패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생산성이 낮은 기업들이 정부 조달 계약을 더 많이 획득했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결과를 종합해 보면, 부패가 생산성이 높은 기업들이 비효율적인 규제를 피할 수 있게 하는 ‘효율적 윤활유’가 될 수 있다는 가설은 러시아에선 일단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다른 국가에 적용해 볼 경우에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정권이 추진하는 사업에 돈을 내고 이권을 얻거나 민원을 해결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 기업들에도 큰 시사점을 준다.

이왕휘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lee.w@ajou.ac.kr
#정경유착#경제 윤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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