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학자금 대출의 늪… 공부할수록 가난한 청춘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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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우 마이너스에서 벗어나 0점에서 시작하려 하니 이미 40세가 되어 버렸다”는 말은 나의 현재이자 미래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천주희·사이행성·2016년)


2013년 2월경이었다. 퇴근 후 집에서 맥주 한 캔을 딴 뒤 길게 한 모금을 들이켰다. “그동안 고생했다”는 혼잣말과 함께. 오랫동안 붙이고 다니던 ‘채무자’라는 꼬리표를 마침내 떼어낸 걸 자축하는 ‘혼술’이었다.

 2000년 처음 받기 시작한 학자금 대출은 졸업을 앞두고 7번으로 늘어나 있었다. 졸업 이후 원금을 상환하고 이자만 갚는 조건이었다.

 빚 독촉은 평등했다. 상환일은 매달 어김없이 돌아왔다. 한국 나이로 서른, 어느 회사의 부름도 받지 못한 대졸 실업자에게 빚 부담은 무섭고 무거웠다.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찾았지만 수입은 들쑥날쑥했다. 어느 달엔 통장에 들어온 돈보다 빠져나간 금액이 더 많았다.

 그때마다 밥 대신 라면을, 버스 대신 도보를 택해야만 했다. 친구들과의 약속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며 나가지 않았다. 다른 경쟁자들이 일자리 찾기에 모든 것을 ‘올인’할 때 다음 달 통장 잔액을 채우는 데 온 정신을 쏟아야만 했다. 끝이 없을 것처럼 보이던 암흑기는 한 회사에 입사하면서 1년 반 만에 막을 내렸다. 이후 모든 학자금 대출 상환을 축하하는 술잔을 들기까지는 3년 반이 더 걸렸다.

 천주희의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에는 미래를 밝혀줄 ‘빛’ 대신 ‘빚’의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는 ‘부채세대’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 역시 학교를 다니던 10년간 22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받았다.

 경제적 부담과 가족을 향한 미안함은 온전히 개인의 몫이다. 상황이 이럴진대 “헬조선 운운 말고 더 노력하라”는 말은 공허하다. 이 와중에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하라”던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의 페이스북 글은 세상을 향한 청춘들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저자는 공부가 빚이 아닌, 청춘들의 미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려면 청춘들이 비슷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경주에 뛰어들어볼 만하다는 마음이라도 먹을 수 있게.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노력#헬조선#학자금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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