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수리 일감이라도 돈 된다면 마다안해” 중견 업체들 안간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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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향 잃은 산업 구조조정]

 현대중공업그룹 계열 중형 조선사인 현대삼호중공업이 1999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다음 달 무급휴직을 시행한다. SPP조선은 수주 일감이 모두 바닥나면서 다음 달이면 경남 사천조선소의 독(dock·선박 건조대)이 텅 비게 된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 ‘빅3’가 수주 절벽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가운데 국내 중견·중소 조선사들은 불황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보다 더한 ‘벼랑 끝’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한국 조선업계는 ‘빅3’를 필두로 STX조선해양, 성동조선해양, SPP조선 등 중형 조선사들이 각자 주력 선종 분야에서 강점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글로벌 불황이 심화되면서 한국 조선업계 수주액 중 중형 조선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2007년 26.7%(262억 달러)에서 지난해 6%(13억 달러)까지 쪼그라들었다. 같은 기간 국내 조선소 수는 66곳에서 47곳으로 28.9% 급감했다.

 STX조선해양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에 들어가 있고, SPP조선은 재매각이 되지 않으면 청산될 처지다. 성동조선, 대선조선, 한진중공업도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 후 인력 감축과 자산 매각 등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문제는 이 조선사들이 수년간 구조조정에도 뚜렷한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STX조선은 2013년 이후 채권단으로부터 4조5000억 원을 지원받았고 성동조선 1조9000억 원, SPP조선도 1조850억 원 등을 지원받았다. 하지만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형 조선사의 경영 상황은 조선업 불황과 겹치면서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당장 내년 상반기만 지나면 상당수 중형 조선소는 줄줄이 일감이 바닥을 드러낸다. 이런 위기감 속에 최근 들어 일부 중소형 조선사 사이에선 선박 수리 일감이라도 찾자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현재 국내 대형 선박들은 베트남 등 동남아 조선소에 수리를 맡기고 있다.

 신규 수주가 없다면 내년 하반기 일감이 바닥나는 한 중형 조선소 관계자는 “선박 수리에 따른 환경오염 문제가 있지만 돈을 벌 수 있고 회생에 도움이 된다면 선박 수리 일감을 마다할 상황이 아니다”라며 “독이 비는 내년부터는 수리 일감을 맡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형 조선소들의 무리한 저가 수주는 오히려 구조조정에 독이 될 수 있다”며 “덩치를 줄여 적자폭을 최소화하고, 장기적으로 이익이 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체질을 개선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조선업#구조조정#불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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