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계-정부 3중고에 빠진 한국경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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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수주 절벽→ 조선 수주량 12년만에 최저… 삼성重 “내년 순환 무급휴직”
SPP조선 10월이면 독 비어
② 최대 부채→ 가계 빚 1257兆 역대 최고… 상반기에만 54兆 늘었는데
정부 내놓은 억제책은 느슨
③ 정책 표류→ 활성화 대책들 국회서 제동… 추경도 골든타임 한달 넘겨
여야 뒤늦게 30일 처리 합의

썰렁한 선박 건조대 두 달 뒤면 일감이 바닥나 독(dock·선박 건조대)이 완전히 비게 되는 경남 
사천시 사남면 SPP조선 작업장(야드). 2012년 7000여 명이 일하던 이곳은 지금은 1000여 명만 남아 마지막 선박 건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천=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썰렁한 선박 건조대 두 달 뒤면 일감이 바닥나 독(dock·선박 건조대)이 완전히 비게 되는 경남 사천시 사남면 SPP조선 작업장(야드). 2012년 7000여 명이 일하던 이곳은 지금은 1000여 명만 남아 마지막 선박 건조 작업을 하고 있다. 사천=서영수 기자 kuki@donga.com
국민과 기업들을 애타게 했던 11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추경)안이 이달 말 처리된다.

여야는 25일 막판 협상 끝에 26일부터 추경안 심사를 재개하고 30일 본회의를 열어 추경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했다. 여론의 질타가 거세지자 여야가 한 발씩 물러나면서 추경안과 본예산안이 동시에 국회에 계류되는 초유의 사태는 피한 것이다.

여야가 국가경제를 볼모로 정쟁을 벌이며 지연시켜 오던 추경안의 처리가 우여곡절 끝에 합의됐지만 한국경제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가계가 사상 최대 부채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는 가운데 조선·해운 등 주력산업의 실적은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각종 정책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제 역할을 못 하면서 하염없이 표류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6월 말 현재 가계부채 잔액은 1257조3000억 원으로 또다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말보다 54조2000억 원 급증한 것으로, 증가폭 역시 상반기(1∼6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다. 가계부채 총액을 인구 수(5163만 명)로 나누면 국민 1인당 2434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날 정부는 주택공급 물량을 줄이고 집단대출을 조이는 것을 뼈대로 하는 ‘가계부채 관리방안’을 내놨지만 대책의 강도가 약해 효과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한국경제를 지탱해 온 주력산업들은 시련을 겪고 있다.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업의 경우 수주절벽이 현실화하고 있다. 조선업계 수주잔량은 지난달 말 기준으로 12년 8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한때 세계 10위 자리에까지 올랐던 중견기업 SPP조선의 사천조선소는 10월이면 수주 물량이 떨어져 독(dock·선박 건조대)이 모두 비게 된다. 올 들어 수주실적이 ‘0’인 삼성중공업은 이미 진행 중인 희망퇴직에 더해 내년부터 순환 무급휴직도 실시할 계획이다.

가계와 기업의 심리가 급격하게 얼어붙으면서 시장에선 또 다른 경제 주체인 정부가 구원투수로 나서길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정책을 내놓아도 번번이 국회에서 제동이 걸려 수개월째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정책 발표만 하고 적극적으로 국회를 설득하지 않는 정부의 무기력한 모습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비록 여야가 이날 추경 처리에 뜻을 모았지만 정치권은 한 달이 넘도록 추경과 무관한 정쟁을 벌이며 ‘골든타임’을 허비했다. 그동안 국민과 경제계는 속이 타들어갔지만 정치권 어디에서도 위기의식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총체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최소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경제정책은 경제원칙에 따라 풀어나간다는 전제 아래 경제와 정치를 최대한 분리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입법부도 행정부만큼 국정 운영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정임수·정민지 기자
#수주 절벽#부채#정책#한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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