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新보호무역 시대, 낡은 수출전략으론 먹고살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일 00시 00분


코멘트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어제 “한국은 여전히 사업하기 어려운 환경이며 이를 개선하려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완전히 이행해야 한다”면서 법률시장 개방을 촉구했다. “자동차 좌석 크기를 수치로 정해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며 한국의 규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통상(通商) 압박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다.

오늘 방한하는 제이컵 루 미국 재무장관도 통상 문제와 원화 환율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거론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대선 국면에서 공화당 주자 도널드 트럼프가 외친 ‘반(反)자유무역’의 공명(共鳴)을 타고 누가 차기 대통령에 당선되든 보호무역주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미국대사의 FTA 이행 촉구는 이런 변화 기류의 전조일 뿐이다.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피하려면 정확한 통상 논리를 갖추고 우리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시켜야 한다. 그럼에도 리퍼트 대사의 지적에는 곱씹을 대목도 있다. 한미 양국은 FTA에서 2017년부터 법률시장을 개방하기로 했지만 현행법은 합작법인 설립 시 외국 로펌의 지분을 49%로 제한했다. 대통령이 규제개혁회의를 5번이나 주관해도 규제는 잡초처럼 끈질기게 살아남아 진입 장벽을 치고 국내외 기업을 괴롭힌다. FTA를 ‘경쟁을 통한 경쟁력 확보’ 기회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어렵게 얻은 기회를 사장(死藏)하는 꼴이 될 수 있다.

더구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는 공급 과잉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겉으로는 자유무역을 주장하지만 자국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보호무역으로 돌아서는 추세다. 정부가 이런 세계적 흐름을 읽지 못하고 ‘수출만이 살 길’이라는 과거의 성장전략에만 몰두한다면 잠재성장률 둔화를 피할 수 없다. 5월 수출액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6% 감소하는 등 월별 수출이 지난해 1월 이후 17개월 연속 뒷걸음질치는 것도 제조업 경쟁력 추락과 함께 보호무역주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정부는 대증요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불치병을 수출금융 확대 같은 단기 대책에 치중할 뿐, 내수를 키우는 근본적인 수술을 못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2년 말 당선인 시절 “지금까지 대기업 수출에 의존하는 외끌이 경제 성향이었다면 이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과 내수가 함께 가는 쌍끌이로 가겠다”고 강조했지만 거꾸로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는 전통적인 제조업 중심의 수출로는 먹고살기 힘든 세상이 됐다는 인식의 공유를 시작으로 산업 구조를 바꾸는 개혁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좁은 한국 내수시장에 더해 중국을 제2의 내수시장으로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래야 신(新)보호무역주의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리퍼트#주한 미국대사#한미 자유무역협정#fta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