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 배앓이 보며 가슴앓이… 먹이 만들어 月 3000만원 매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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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수 ‘둥근볏짚’ 대표

14일 오후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둥근볏짚 농가에서 김희수 대표가 트랙터에 올라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트랙터 뒤편에 그가 만든 원형볏짚이 쌓여 있다. LG그룹 제공
14일 오후 전북 완주군 구이면 둥근볏짚 농가에서 김희수 대표가 트랙터에 올라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트랙터 뒤편에 그가 만든 원형볏짚이 쌓여 있다. LG그룹 제공
14일 오후 전북 완주군의 한 농가에 흰색 트럭이 먼지를 풀풀 날리며 들어왔다. “축사가 많이 누추하죠?” 한 청년이 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얼핏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그는 김희수 둥근볏짚 대표(21)였다. 쭈뼛쭈뼛 말을 건네는 모양새에서 초짜 사장 티가 났다.

○ 소를 생각하는 소년

김 대표는 지난해부터 소가 먹는 조사료와 곤포 사일리지(원형볏짚)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곤포 사일리지는 사료 작물을 말린 뒤 흰색 비닐로 여러 겹 둥글게 포장해 진공 상태로 저장 발효한 소 먹이다. 그가 설명하다 말고 들판을 가리켰다. 손끝에 ‘커다란 마시멜로’들이 쌓여 있었다. 김 대표가 만든 곤포 사일리지였다.

그를 따라 5분 거리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마당이 딸린 아담한 집이었다. 문을 열자 방문에 붙어 있는 브로마이드가 보였다. 트랙터 사진 아래 ‘강한 트랙터 힘센 트랙터’라고 쓰여 있었다. “제가 탐내고 있는 거예요. 제가 볏짚 사업을 하니까 필요하기도 하고요.”

김 대표가 소의 사료에 빠진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2012년 그와 아버지는 어려운 살림에 돈을 빌려 소 20마리를 샀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400만 원 주고 산 소 먹이가 형편없었던 것. “짚 사이에서 농약병이 나오고 쓰레기가 나오고 그랬어요. 또 흙이 너무 많아 볏짚 반, 흙 반이라고 부르는 게 옳을 정도였어요.”

그런 볏짚을 먹은 소가 온전할 리 없다. 김 대표는 소가 배앓이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직접 건강한 먹이를 만들어 먹여야겠다’고 다짐했다.

○ 학교에서 찾은 해답


소 먹이를 사업 아이템으로 잡은 후에도 한참을 사업 구상에 몰입했다. 그러다 2014년 연암대 축산학과에 입학했다. 다른 몇몇 대학에도 합격했지만 실습 위주로 수업이 짜여 있다는 정보를 듣고 이 학교를 택했다. 그 선택이 옳았음은 머지않아 입증됐다. 2학년 때인 지난해 봄, 그는 ‘사료 작물’이라는 과목을 수강했다. 가축의 사료를 생산하는 과정과 사료의 수분 함량 같은 것을 자세히 배웠다. 사료 작물을 파종하는 실습도 병행했다. 그 과정에서 배운 바가 컸다. “소 사료에 수분이 많으면 산도가 높아지는데 이걸 소가 먹으면 배앓이를 한다고 합니다. 수업을 들으면서 3년 전을 떠올렸어요.”

수업을 듣고 실습을 하면서 자신감이 생겼다. 8월에 그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은행 대출을 받아 중고 트랙터를 7500만 원 주고 샀다. 원형 결속기와 포장 기계도 샀다. “가격은 비싸더라도 좋은 짚을 만들자고 다짐했어요. 만드는 방법과 실습은 학교에서 끝냈습니다.”

그는 짚의 재료인 벼의 잎과 줄기를 모을 때 흙이 섞이지 않도록 남들보다 신경을 많이 쓴다. 트랙터 갈퀴가 볏짚만 긁을 수 있게 높이를 조절하고 작업 속도도 늦췄다. 또 논의 사각 모퉁이 부분에 있는 볏짚은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아예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성을 쏟아 만든 그의 짚은 시세보다 덩이당 5000원가량 비싸다. 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다. 김 대표는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30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강의실에서 수업만 들었으면 사실 자신 없었을 거예요. 실제로 실습하면서 사업이 잘될 거라고 확신했어요.” 소가 건강해지는 사료를 잘 만드는 게 사업이 번창하는 비결이라며, 앞으로도 사료에만 매진하겠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김희수#둥근볏짚#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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