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지주사 전환’ 국회가 발목… 개혁 물건너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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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일본 일찌감치 거래소 개편… 필리핀 등 신흥국도 해외진출 나서
한국만 제자리… 국제경쟁력 최하위
‘자본시장법 개정안’ 여야 의견차… 상임위 법안소위 문턱도 못넘어

국내 자본시장 개혁의 토대로 꼽히는 한국거래소의 구조개편 방안이 좌초할 위기에 놓였다. 거래소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정치권의 대립으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거래소는 물론이고 국내 자본시장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내년에는 미국의 본격적인 금리 인상과 신흥국의 경제 불안 등으로 세계 금융시장의 격변이 예상돼 이번 기회를 놓친다면 국내 자본시장이 퇴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 글로벌 경쟁에서 소외된 한국거래소

20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현재 거래소의 지주회사 전환과 기업공개(IPO)가 이뤄지지 않은 나라는 한국과 슬로바키아 2개국뿐이다.

최근 한국과 경쟁하는 아시아 주요 거래소들은 지주회사 전환, IPO 등의 구조개편을 끝내고 발 빠르게 해외시장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2000년에 일찌감치 IPO에 나선 홍콩거래소는 2012년 세계 최대 금속거래소인 런던금속거래소를 인수한 데 이어 지난해 중국과의 교차거래를 시행해 글로벌 자금을 끌어들이고 있다. 일본은 2013년 도쿄와 오사카거래소를 지주회사 형태로 통합해 상장한 뒤 싱가포르, 대만 등과 교차거래를 확대했다.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신흥국마저 구조개편을 마치고 덩치를 키우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2009년부터 6년간 공공기관으로 묶였던 한국거래소는 이 같은 흐름에서 소외됐다. 거래소 사업이 국내 시장에 한정돼 있고 다른 아시아 국가에 비해 경쟁력이 뒤처지다 보니 해외로 투자자금이 유출되면서 국내 증시의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 국내 증시의 시가총액 성장률은 2010년 이후 연 2%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월평균 거래대금도 2011년 188조 원을 정점으로 매년 하락해 지난해 122조 원대로 쪼그라들었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올해 국가경쟁력 보고서에서 한국의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은 47위, 자본시장 규제 안정성은 78위로 아시아 주요국 중 가장 낮게 평가했다.

○ “임시국회에서 법 통과돼야”

이 때문에 자본시장의 핵심 인프라인 거래소의 구조개편을 통해 시장 전체의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거래소를 지주회사로 바꾸고 코스피·코스닥·파생상품시장을 자회사로 두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19대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법안은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 문턱조차 넘지 못한 상태다. 당초 거래소의 상장차익 환원 문제를 놓고 여야 간에 논란을 빚다가 나중에는 거래소 본사 소재지를 부산으로 명시하는 규정을 두고 국회의원들 간에 갈등이 빚어졌기 때문이다.

정무위는 이달 22, 23일경 자본시장법 개정안에 대한 심의를 재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본사 소재지 명시 규정을 둘러싼 부산과 비(非)부산 지역 의원 간의 견해차가 커 법안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내년 국회의원 총선 등 정치 일정을 고려하면 올해 안에 법안이 통과되지 못할 경우 현 정부 임기 내에 법안 처리가 사실상 힘들어진다”고 우려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은 “거래소 구조개편과 상관없는 정치적인 이유로 중요한 법안이 처리되지 못하고 있다”며 “법안 처리가 미뤄져 거래소 구조개편 작업이 장기화될 경우 불확실성이 커지고 시장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라고 지적했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거래소#지주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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