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김정주 “게임 창업에만 몰두… 혁신적 도전 아쉽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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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둔의 경영자’ 김정주 넥슨 창업자, 벤처업계에 쓴소리
게임업계 지망생들과 대화

김정주 NXC 대표가 2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넥슨 사옥에서 게임 제작 동아리 및 게임업계 지망생들에게 창업 초기 
경험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 대표는 벤처 1세대로서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을 자신의 ‘인생 
고민’이라고 표현했다. 성남=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김정주 NXC 대표가 25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넥슨 사옥에서 게임 제작 동아리 및 게임업계 지망생들에게 창업 초기 경험담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김 대표는 벤처 1세대로서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을 자신의 ‘인생 고민’이라고 표현했다. 성남=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국내 대표 게임업체 넥슨(NEXON)을 창업한 김정주 NXC(넥슨의 지주회사) 대표(47)에게는 늘 다양한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벤처 1세대’ ‘인수합병(M&A)의 큰손’ ‘게임왕’ 등이다. 공개석상에 자주 모습을 비치지 않기로 유명해 ‘은둔의 경영자’로도 불린다.

25일 오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판교로 넥슨 사옥 ‘1994홀’에 짧은 스포츠머리를 한 김 대표가 모습을 드러냈다. 1994는 넥슨 창업연도(1994년)를 뜻한다. 이날 김 대표는 넥슨에서 후원하는 게임 제작 동아리 및 게임업계 지망생들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어택(Creative Attack)’이란 주제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게임산업과 창업에 대한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다.

강연 후 김 대표를 직접 만나 벤처 1세대로서의 책임과 고민, 한국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평가 등을 물었다. 김 대표는 답변 중간 중간에 “건방지게 들릴 수 있겠지만”이란 표현을 쓰며 조심스럽게 얘기했다.

○ “벤처 1세대로서 책임감이 크다”


김 대표는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김범수 다음카카오 이사회 의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등과 함께 ‘한국 벤처 1세대’로 꼽힌다. 이들 모두 1990년대 초·중반 창업해 정보통신기술(ICT) 및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기업을 만들었다. 그에게 “벤처 1세대로서 어떤 책임감을 느끼느냐”고 물었다.

한참 고민하던 김 대표는 “벤처 1세대들이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며 입을 열었다. 그 책임을 ‘인생 고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는 “게임뿐 아니라 다른 산업 부문에서 젊은 세대가 씨앗을 뿌리면 뿌리를 잘 내릴 수 있도록 양질의 토양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아직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것은 사실”이라며 “반성과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페이팔 마피아(Paypal Mafia)’를 선순환 구조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1998년 설립한 온라인 결제 서비스 페이팔은 2002년 이베이에 15억 달러(약 1조7000억 원)에 팔렸다. 이후 돈방석에 앉은 페이팔 초기 멤버들은 혁신적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에인절 투자자로 활동하고 있다. 페이팔 마피아는 이들을 가리키는 용어다.

○ “해외에 비해 많이 뒤처졌다”

국내 벤처 및 스타트업 업계에 대한 김 대표의 평가는 냉정했다. 그는 “가끔은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안타깝다”고 했다. 지역별 창조경제혁신센터와 구글 캠퍼스, 요즈마 캠퍼스 등 글로벌 프로그램, 민간 창업보육 생태계 등 최근 스타트업 업계에는 ‘제2의 벤처 붐’이라고 불릴 정도로 창업에 대한 열기가 뜨겁지만 김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한국 스타트업은 해외와 비교해 예전보다 더 큰 격차가 벌어져 있다. 절대적 창업자 수는 늘었을지 몰라도 창업 아이템이 게임에 몰려 있는 등 편향돼 있는 데다 혁신적이라고 할 만한 도전을 찾기 힘들다. 입시지옥 등 정해진 테두리 안에 갇혀 살아온 후배들이 이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어떻게 이들의 눈을 깨워줄까’란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다. 똑같은 기술 수준으로 해외에서는 귀뚜라미로 단백질 과자를 만든다. 두 발로 가는 전기이륜차도 나오지만 국내에서는 독서실 베개, 출석체크 의자를 만드는 식이다.”

김 대표는 ‘망해도 괜찮고, 무엇이든 좋다는 자유’를 가능케 하는 해외 스타트업 업계의 ‘토양’을 부러워하는 듯했다.

○ 반골 기질, 도전, 자신감이 키워드


김 대표는 이날 강연과 인터뷰 내내 현재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을 ‘초일류급 인재’로 표현했다. 그는 “미국, 유럽에서 태어났으면 게임업체뿐 아니라 구글, 애플 등 다양한 글로벌 소프트웨어 기업을 갔을 수 있는 후배들이 한국에 있다는 이유로 넥슨, 엔씨소프트, 넷마블 등 좁은 선택지를 받는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넥슨은 우수한 지적재산권(IP) 및 인적 자원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있어 한 번의 실패로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며 “그럼에도 ‘이대로는 안 된다’ ‘내가 들어가서 고친다’ 등 당당히 말하고 덤빌 수 있는 도전의식과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원하고, 실제로 받아준다”고 강조했다.

성남=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김정주#넥슨#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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