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상처 보듬은 순례, 다시 누군가 사랑할 힘을 얻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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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이렇게 살아남았어. 나도 너도. 그리고 살아남은 인간에게는 살아남은 인간으로서 질 수밖에 없는 책무가 있어. 그건, 가능한 한 이대로 확고하게 여기에서 살아가는 거야. 설령 온갖 일들이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해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민음사·2013년) 》

인기 예능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하는 추성훈의 딸 추사랑(3)의 팬이다. 귀엽고 깜찍한 사랑이와 동갑내기 유토의 풋풋한 모습은 보기만 해도 흐뭇하다. 사랑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에 유토는 “17살에 하와이에서 사랑이와 결혼할 것”이라고 말하며 사랑이를 꼭 끌어안았다. 이 모습을 보면서 두 꼬마의 소중한 관계가 어른이 되어서도 지금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누군가와 단단한 관계를 맺지만 그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기도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자전적인 소설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에서 소중한 관계가 소멸된 후 삶을 회복하지 못한 채 아무것도 담을 수 없는 빈 그릇이 돼 버린 존재를 그렸다. 주인공인 다자키 쓰쿠루는 대학교 2학년 때 나고야 고교시절부터 절친했던 친구 4명으로부터 절교를 통보받고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그 후 그는 누구와도 의미있는 관계를 맺지 못하고 16년이라는 세월을 흘려보낸다.

쓰쿠루는 자신이 추방당해야 했던 이유와 마주하기 위해 순례를 떠난다. 하지만 그의 기억속에서 배려 넘치고 똑똑했던 아카(빨강)와 럭비부 주장을 맡았던 아오(파랑), 섬세하고 아름다웠던 시로(하양), 활발하고 유쾌했던 구로(검정)의 모습은 이제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만난 친구들은 저마다 상처를 안고 있었고 선명했던 색채도 희미해져 있었다. 오랜 여정 끝에 진실과 마주한 쓰쿠루는 그제야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힘을 얻는다.

소중했던 시절 찬란하게 빛나던 관계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쉽게 깨어지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깨어진 마음의 그릇을 어떻게 다시 만드느냐다. 누군가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면 소중한 관계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하루키가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을 쓰쿠루(만들다)로 지은 이유이기도 하다.

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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