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대차가 한국 아닌 독일에 인터넷은행 설립하는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3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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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그룹이 유럽 시장 공략을 위해 이르면 내년 상반기 독일에서 인터넷 전문은행 ‘현대캐피탈뱅크유럽’ 영업을 시작한다. 초기 자본금 4420만 유로(약 570억 원)를 투자해 유럽 시장에서 자동차 할부, 리스, 보험 등 각종 자동차 금융상품을 판매하고 여신 및 수신 업무도 할 계획이다. 독일에서는 BMW,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도요타, 혼다 등 글로벌 자동차업체들이 인터넷은행은 물론이고 점포를 갖춘 일반 은행 영업도 하고 있다. 현대차가 한국 아닌 독일에 인터넷은행을 세우는 이유는 바로 한국의 법적 규제 때문이다.

은행법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의 칸막이를 치는 금산(金産) 분리를 위해 산업자본이 은행에 대해 의결권을 가진 지분을 4% 이상 보유할 수 없게 막고 있다. 삼성이나 현대차처럼 상호출자제한집단으로 지정된 대기업은 은행을 설립할 수 없도록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도 존재한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인터넷 전문은행에 대해서는 산업자본의 은행 보유한도 지분 한도를 확대하는 은행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자산 5조 원 이상의 대기업집단은 제외했다. 은행법 개정도 국회의원 상당수가 ‘재벌을 위한 법’이라고 주장하고 있어 국회 통과가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한국에서는 은행을 소유할 만한 자금력을 갖춘 금융자본이 드물다. 엄격한 금산분리 규제 때문에 정부 소유 은행을 민영화하려면 과거 한국 경제에 큰 피해를 준 론스타 같은 해외 투기자본 외에는 자격을 갖춘 후보를 찾기도 쉽지 않다. 예금보험공사가 대주주로 있는 우리은행을 민영화해 ‘주인’을 찾아주는 작업이 네 번이나 실패하면서 질질 끌게 된 것도 금산분리 규제가 큰 걸림돌이었다.

이 규제를 풀면 은행이 대기업 같은 산업자본의 사(私)금고로 전락할 우려가 높다는 주장도 있지만 현행 규제를 계속 끌고 나가는 데 따른 폐해도 생각할 때가 됐다. 금융시장의 경쟁력을 높여 소비자 편익을 키우기 위해서도 진입장벽을 깨고 ‘메기 효과’를 낼 수 있는 경쟁자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민감한 사안인 일반 은행의 금산 분리 완화는 일단 접어두더라도 우선 인터넷 전문은행부터 산업자본의 진입 규제를 대폭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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