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적자 쌓였어도, 흑자 내면 법인세 면제 안해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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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세금감면 혜택 축소]

《 정부가 대기업에 대한 비과세·감면 혜택을 대폭 줄이기로 한 것은 경기부진 장기화로 세수(稅收)가 부족한 재정위기 상황과 ‘부자 증세’를 요구하는 야당의 공세를 동시에 돌파하기 위한 ‘이중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는 대기업들을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다는 판단까지 겹쳐 대기업 중심으로 짜인 세제지원책의 근본적인 조정에 나섰다는 관측도 나온다. 》

○ 대기업에 유리한 R&D 공제


동아일보가 19일 현대자동차의 재무제표를 분석한 결과 현대차가 지난 3년간(2012∼2014년) 연구개발(R&D) 비용으로 세액 공제받은 금액은 3564억 원이었다. 2012년에는 1144억 원, 2013년 1139억 원, 2014년 1281억 원을 각각 공제받았다. 또 지난 3년간 삼성전자는 총 2조7643억 원을 세액 공제받았다. 이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규모가 가장 큰 원인이지만 상대적으로 대기업들에 유리하게 설계된 R&D 세액공제제도도 영향을 미쳤다.

정부는 기업이 연구소 직원의 인건비와 훈련비, 연구용 물품비 등으로 지출한 금액 중 일부를 세액 공제해주고 있다. △해당연도에 지출한 R&D 비용에 일정 비율을 공제하는 당기분 방식(대기업 2∼3%, 중견기업 8∼15%, 중소기업 25%) △전년도에 비해 증가한 금액 중 일부를 공제하는 증가분 방식(대기업 40%, 중소·중견기업 50%) 중 유리한 쪽을 기업이 선택한다.

삼성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이 당기분 방식을 선택하면 투자금액의 2∼3%를 공제받지만 증가분 방식을 적용하면 R&D 비용 증가분의 40%까지 공제받을 수 있다. 특히 R&D 비용 증가율이 5.3%만 넘으면 증가분 방식이 유리해진다. 최근 3년간 대기업의 R&D 평균 증가율이 13.9%나 됐기 때문에 대기업들은 대부분 세금 규모를 줄일 수 있는 증가분 방식을 선택해왔다.

올해 세제개편을 통해 정부는 증가분 방식에서 대기업에 적용되는 공제율을 40%에서 30%까지 낮춰 세제혜택을 줄일 방침이다. 새로운 방식이 적용됐다면 현대차의 최근 3년간 R&D 세액공제 혜택은 실제로 받은 3564억 원보다 2674억 원이 적은 890억 원이 된다.

이와 함께 R&D 비용 증가율이 일정 기준 이상인 기업들만 증가분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올해 말 일몰 예정인 R&D 관련 설비투자 비용에 대한 세액공제 역시 기한은 늘리되 대기업 공제율을 현행 3%에서 단계적으로 낮추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 흑자에도 법인세는 ‘0원’

2008년 전자업체 A사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1조9200억 원의 손실을 냈다. 이후 2009년 소폭 흑자로 돌아선 뒤 2010년 2조9700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하지만 이 회사가 2010년에 낸 법인세는 0원이었다. 최장 10년 이내에 결손금이 있을 경우 이를 현재의 이익과 상계해 공제받을 수 있는 ‘이월결손금 공제’ 제도 덕분이었다. 2010년 이전 5년 동안 A사의 누적 결손금은 3조 원으로 그해 영업이익보다 많았다.

이처럼 많은 기업이 적자를 냈다가 흑자로 전환된 이후에도 이월결손금 공제를 활용해 법인세를 납부하지 않았다. 특히 2008년 세법 개정으로 이월결손금의 공제기간이 5년에서 10년으로 연장돼 법인세수에 악영향을 미쳤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월결손금으로 공제받을 수 있는 금액의 한도를 당해연도 소득금액의 80% 수준으로 설정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이 방안이 확정되면 A사는 3조 원의 이월결손금을 전액 공제받지 못하고 영업이익 2조9700억 원의 80%인 2조3760억 원까지만 공제받을 수 있다. 공제 뒤 남은 영업이익 5940억 원에 대해 22%의 법인세율(과표 구간 200억 원 초과)을 적용하면 A사는 1306억 원을 법인세로 내야 한다. 정부 관계자는 “공제기간이 연장된 만큼 공제한도를 두더라도 기업의 세금 부담은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이월결손금 공제한도를 설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대기업도 기업회생 절차를 밟고 있는 경우에는 예외를 인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엇갈리는 반응

정부는 두 가지 방안 이외에도 청년을 고용하면 세제상 혜택을 주는 청년고용증대세제 신설, 업무용 차량에 대한 손비규정 개정, 고용창출투자 세액공제율 인하 등 대기업에 적용되는 다양한 비과세·감면 혜택의 조정을 검토하고 있다.

전병목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법인세제의 효율성을 제고하고 국가재정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특히 감면제도 중 규모가 가장 큰 R&D 세액공제에 대해선 점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원칙 없는 조정은 자칫 기업의 투자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며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은 “가뜩이나 잠재성장률이 떨어지고, 여러 산업 분야에서 중국과의 기술격차가 줄거나 추월당하는 상황에서 R&D 지원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김철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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