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누구나 마음속에 따뜻한 밥 한그릇 ‘엄마 밥’을 안고 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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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돼지고기 된장국 정식·600엔, 맥주(대)·600엔, 청주(두 홉)·500엔, 소주(한 잔)·400엔.’ 메뉴는 이것뿐이다. 나머지는 알아서들 주문하면 만들 수 있는 한 만든다. ―‘심야식당1’(아베 야로·미우·2008년) 》

집 앞 골목에 작은 식당이 하나 있다. 3층짜리 상가 1층에 차양을 치고 현수막으로 간판을 걸었다. 테이블 세 개로 꽉 차는 공간이라 저녁 시간이면 손님들이 알아서 의자를 당겨 앉는다.

딸만 둘인 이 집 아이들은 손님들 틈에 앉아 같이 밥을 먹었다. 손님들 밥도 반찬도 엄마가 애들 먹이는 밥상과 다를 게 없었다. 시킨 거와 상관없이 ‘이모’는 봄이면 초장 양념에 무친 봄동이며 쌉싸래한 민들레 김치를 내놨다. 숙취에 절어서 간 날에는 마를 갈아서 주곤 했다. 손님들은 다들 단골이라 일손이 없으면 밥도 직접 퍼 담고 카드 결제기도 직접 눌렀다.

그래서인지 작은 식당엔 이야기가 많았다. 차량 담보 대부업 사장님이 사무실을 더 낸다니 요즘 얼마나 경기가 어려운지, 높은 분 운전기사 한다는 이가 왔는데 얼마나 불평을 하는지, 누구 집 총각이 누구 집 아가씨를 얻어 장가를 갔는지. 일이 터져 정신없이 기사를 넘기고 저녁때도 다 놓치고 나면 나는 혼자 그 식당에 갔다. “왜 오늘은 죽상이야?” 하며 이모가 뜨거운 순두부 뚝배기를 내려놓으면 그날 하루도 소소해졌다.

다 크고 나서야 오이무침이나 가지볶음이 냉장고에서 그냥 나오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엄마 밥이 좋은 이유는 메뉴가 없기 때문이다. 척척 꺼내는 밑반찬에 두부 참치 넣고 끓인 김치찌개면 끝이다. 어딜 가서 또 한 끼를 어떻게 때울지, 고민하다 공허하지 않아도 된다.

아베 야로가 그린 ‘심야식당’은 그런 곳이다. 당면샐러드, 하루 묵힌 카레, 버터 녹인 밥에 간장 넣어 비빈 버터라이스. 모두 식당 메뉴엔 없지만 누군가의 하루를 녹이고 빈 마음을 채우던 음식들이다. 엄마 밥상 앞에 앉던 아이들은 모두 어른이 됐지만, 모두 마음속에 따뜻하고 익숙한 밥그릇 하나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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