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테크 발목잡는 대못 규제 ‘18字’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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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본인 실명증표를 확인한 후 교부할 것’ 문구에 OTP 기술 실용화 못해

“규제를 못 없애겠다는 말보다 규제 폐지를 검토해 보겠다는 말이 기업을 더 피 말리게 합니다. 폐지 검토만 5년째 하고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솔루션 기업인 인터페이의 김주종 상무는 최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핀테크 분야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 정부는 5년째 ‘규제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가 말한 정부의 규제는 ‘전자금융감독규정 제34조 2항 3호’다.

금융회사나 전자금융업자가 준수해야 할 사항을 정해 둔 이 조항은 ‘접근매체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인 실명증표를 확인한 후 교부할 것’이다. 접근매체는 일회용 비밀번호(OTP·One Time Password)나 보안카드 등을 의미하며, 실명증표는 주민등록증이나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을 일컫는다. 이 규정을 쉽게 해석하면 OTP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은행 창구를 방문해 신분증을 제시한 뒤 본인임을 확인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때문에 금융업계에서 ‘은행 직원과 반드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의미로 ‘대면 규정’이라고도 불린다. 인터페이뿐 아니라 많은 핀테크 기업 관계자들은 “인터넷, 모바일 금융 시대에 ‘대면’이 웬 말이냐”면서 “규정에서 ‘반드시 본인 실명증표를 확인한 후 교부할 것’이라는 18글자를 없애거나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OTP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200만 개가 발급됐다.

2009년 설립된 인터페이는 2013년 OTP를 휴대전화에 심는 기술 개발에 나섰다. 상당수의 인터넷 금융거래 이용자들이 OTP생성기를 이용하고 있지만, 이를 따로 들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불편했다. 또 OTP생성기는 크기가 작아 잃어버리기 쉽고, 배터리 수명이 다하면 다시 은행을 방문해 재발급 받아야 한다. 휴대전화에 OTP를 넣으면 이런 불편을 해결할 수 있다. 마침 금융위원회 주도로 설립된 비영리사단법인 금융보안연구원에서도 2010년부터 ‘모바일 OTP’ 추진을 검토 중이었다.

인터페이는 14개월 동안 15억 원 이상을 들여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그동안 논의됐던 다른 모바일OTP는 별도의 애플리케이션을 내려받거나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방식인데, 이 과정에서 해킹당할 위험이 높다. 하지만 인터페이의 기술은 스마트폰에 처음부터 OTP를 심는 방식이다. 김 상무는 “스마트폰만 있으면 별도의 OTP생성기를 발급받지 않아도 되고 해킹 위험도 낮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이 기술의 발목을 ‘대면 규정’이 잡고 있다. 현행 규정대로라면 OTP를 심은 휴대전화 판매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소비자가 금융기관의 확인을 받은 뒤 휴대전화를 구입해야 한다는 논리가 성립되기 때문이다.

모바일OTP의 출현을 가로막는 규제는 두 가지였다. ‘대면 규정’과 ‘매체분리 규정’이다. 매체분리 규정은 전자금융감독규정 제34조 2항 5호에 규정된 것으로 ‘전자금융거래수단이 되는 매체와 OTP 등 거래인증수단이 되는 매체를 분리해 사용할 것’이라고 돼 있다. 쉽게 말해 OTP와 휴대전화를 반드시 분리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금융위원회는 핀테크 활성화 차원에서 이달 3일 매체분리 규정을 삭제했다. 하지만 대면 규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금융위원회는 “대면 규정은 폐지를 논의 중이지만 보안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금융정보보안 전문가인 구태언 변호사는 “대면 규정에 대한 해석만 바꿔도 모바일OTP 이용이 가능하다”면서 “현재 휴대전화를 개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본인 확인 절차를 거치기 때문에 해석에 따라 처음부터 OTP를 휴대전화에 심는 것도 규정 위반은 아닐 수 있다”고 제언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핀테크#규제#폐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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