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이 된 ‘공룡 보험대리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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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형보험사의 마케팅 담당 간부 A 씨는 작년 봄 한 법인보험대리점(GA·General Agent) 지사장으로부터 “우리 대리점 소속 설계사들에게 골프채를 주고 싶으니 지원해 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얼마 후 A 씨는 1000만 원 상당의 골프채 40개를 들고 이 대리점 지사장을 찾았다. GA 지사장에게 “이번 달 실적 잘 부탁드린다”는 인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최근 소속 설계사가 1만 명이 넘는 공룡 GA가 잇달아 등장하면서 GA가 보험 판매의 ‘갑’으로 등장하고 있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매출액 기준 손해보험 판매 경로 중에서 GA는 46.6%를 차지해 보험사 전속설계사(26.9%)를 크게 앞선 1위였다. 생명보험에서는 4위였다. 설계사 500명 이상의 대형 GA는 2011년 12월 말 31개에서 지난해 9월 말 35개로 늘었다.

고객이 한 보험사의 상품뿐만 아니라 여러 보험사의 상품을 비교해보고 가입하게 하자는 취지에서 GA제도가 도입됐지만 GA의 힘이 커지면서 ‘갑질’을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에는 보험판매 수수료를 지급하는 보험사가 갑의 역할을 했지만 최근에는 공룡 GA가 선택하는 상품에 따라 보험사 전체 매출이 흔들리기 때문에 보험사들은 GA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험사들은 GA가 수수료가 높은 상품이나 부대 지원을 많이 해주는 보험사의 상품을 ‘몰아주기’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GA를 관리하는 한 보험사 영업담당 직원 B 씨는 “GA 소속 설계사들이 ‘다른 보험사들은 이것도 해준다’며 이런저런 요구를 해올 때가 많다”며 “거절하면 매출이 떨어질까 걱정돼 무리한 요구도 들어주게 된다”고 털어놨다. 회식비 제공, 설계사 해외여행 지원, 사무실 인테리어 교체비용 제공 등이 자주 나오는 요구사항이다.

보험사에 대한 GA의 무리한 요구는 보험료 인상 등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보험사가 GA에 지원하는 회식비, 골프채 구입비도 결국 소비자의 보험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또 설계사에 대한 관리는 느슨히 하면서 실적 경쟁은 과도하게 붙이는 GA들 때문에 결과적으로 불완전판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소속을 자주 바꿔가며 수수료를 챙기는 일부 ‘철새 설계사’ 때문에 보험의 장기관리가 안 되는 ‘고아 계약’이나 기존 계약을 해지시키고 신규 계약을 유도하는 ‘보험계약 갈아타기’(승환계약)가 많아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분기 기준 1년 이상 보험계약을 유지하고 있는 비율은 GA가 80.5%로 보험사 전체 평균인 82.7%보다 낮았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대형 GA의 불건전 영업행위를 상시 감시하는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관리감독도 강화하고 있다. 또 GA가 불완전판매 등으로 보험계약자에게 피해를 입힌 경우 1차적으로 배상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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