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창의 마력… 분열된 조직도 뭉치게 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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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계에서 배우는 경영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하는 리더가 많다. 하지만 음악을 좋아하는 리더는 상당히 많다. 얼굴은 똑 산적 두목이고 하는 행동도 비슷한데 차를 타면 어울리지 않게 클래식 음악을 즐겨듣는 최고경영자(CEO)가 적지 않다. 오디오 마니아도 상당수다. 왜 그럴까. 리더들이 음악을 가까이하는 데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 리더와 음악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전하는 서광원 생존경영연구소장의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66호 기사를 요약한다.

○ 몸도 마음을 움직인다

북극에 가까운 알래스카와 캐나다 북부 지역은 시베리아와 함께 언제나 겨울 같은 곳이다. 생명체가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 살기에 적당하지 않다고 살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놀라운 생명력을 여기서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늑대다. 긴긴 겨울이 오기 시작하면 늑대 무리에게 긴장감이 돈다. 보통 늑대들은 무리를 지어 살지만 이런 곳에서는 무리라고 할 수 없는 몇 마리만이 함께 다닌다. 많은 입을 감당할 만한 먹이를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늑대들은 이런 상황에서 살 길을 찾아야 한다.

물꼬를 트는 것은 역시 우두머리다. 그는 혼자서 먹이를 찾아 나선다. 힘든 여정이다.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천신만고 끝에 먹잇감을 발견하면 특유의 길고 긴 울음소리로 동굴에 있는 무리에게 신호를 보낸다. 먹을 걸 발견했으니 빨리 오라는 소리다. 아무런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올 때도 많다. 빈속으로 대장의 신호를 기다리던 무리들은 초췌한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어 들어오는 대장을 씩씩한 환호성으로 맞아준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빈손으로 들어오는 날이 거듭되면 환호성이 제대로 나올 리 없다. 더구나 굶주려 있다 보니 신경이 날카로워져 사소한 일에도 서로 으르렁대는 등 마찰이 생기고 이런 일이 겹치면 갈등이 증폭된다.

분열은 위험하다. 뿔뿔이 흩어지는 불상사가 생기면 굶어죽을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은 보스의 리더십을 테스트하는 시험대다. 위기상황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모든 것이 달라진다. 노련한 보스는 이럴 때 머리를 어깻죽지에 파묻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다. 먹잇감을 찾았을 때 내는 소리와 비슷한 외침이다. 대장 늑대가 시작하면 다른 늑대들도 하나둘 동참한다. 대장이 내는 음보다 반음 정도 낮은 음의 약간 변형된 소리를 내거나 대장의 소리와 교차시키는 소리를 내는 방식으로 구슬프면서도 감동적인 ‘합창’을 만들어간다. ‘늑대들의 합창’이다. 늑대들은 합창을 통해 분열되기 시작한 마음을 하나로 모은다. 한목소리로 ‘우리는 하나여야 하고, 하나로 뭉쳐야 산다’는 것을 일깨운다. 마음이 몸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몸이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둘은 상호보완 관계다.

○ 혼자 하기보다 같이하면 더 즐거워져

사실 합창뿐만 아니라 음악은 조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다. 제대로 된 조직을 만드는 접착제 역할을 음악이 하고 있다. 사람들은 혼자 음악활동을 하는 것보다 여럿이 다 같이 춤을 추고 노래하는 걸 좋아한다. 더 즐겁기 때문이다. 전 세계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점이다. 인류는 모두가 함께 음악활동을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왔다.

인류 문명사를 연구한 미국 시카고대의 윌리엄 맥닐 교수는 “사람은 박자에 맞춰 함께 힘 있게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지고 함께 움직이는 것에 만족을 느낀다”고 말했다. 영국 레딩대의 인지고고학자 스티븐 미슨은 “음악은 몸을 리드미컬하게 조율해 집단적인 일이 원활하게 흘러가도록 돕기도 하지만 주로 인지적 조율을 꾀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인지적 조율은 음악활동을 함께하는 사람들끼리 공통된 감정상태를 갖고 서로 신뢰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에 의하면 이런 공통된 감정상태는 고통을 통제하는 엔도르핀이 뇌에서 분비되면서 생겨난다. 함께 음악활동을 하면 엔도르핀이 생성돼 행복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호의적으로 되는 것이다.

주목할 것은 이런 감정상태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이다. 1950년대 남아프리카 벤다족과 함께 오래 생활했던 영국의 사회인류학자 존 블래킹은 이들이 어떤 상황에서 공동으로 음악활동을 하는지를 알고 상당히 놀란 적이 있다. 벤다족 사람들이 공동 음악활동을 하는 것은 시간이 남아서 노는 것도,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달라고 기원하는 것도 아니었다. 사실은 정반대였다. 그들은 식량이 풍부할 때 함께 춤추고 노래했다. 또 각자 욕심을 추구할 가능성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즉, 단합이 필요할 때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춘 것이다. 공동으로 음악활동을 할 때는 가장 분열이 잘되는, 그러니까 다시 하나가 돼야 하는 순간이었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는 것은 단순한 개인의 집합이 아니다. 협력의 전제조건인 하나됨을 위한 지극히 중요한 과정이다. 한 연구에 의하면 집단활동은 개인의 이익만이 아니라 사회정체성의 관점에서 개인을 재정의하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자아정체성은 줄이면서 사회정체성은 증진시키는 것이다. 함께 춤추고 노래하면 협력하기가 쉬워진다. 영업을 강조하는 조직은 일을 시작하기 전 함께 노래하고 춤을 춘다. 훌륭한 조직은 합창을 포함한 음악적인 요소들을 의외로 많이 활용하고 있다.

○ 모두 함께 부를 우리의 노래

산적같이 생긴 사장이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고, 음악회에 가며, 오디오광이 되는 건 전혀 이상할 게 없다. 리더들은 조직의 단합에 음악이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이제 리더들은 혼자서만 음악을 즐겨서는 안 된다. 조직에 음악이 흘러넘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딱딱하기만 한 사가(社歌) 대신 모두가 다 같이 부를 수 있는 제대로 된 멋진 합창곡을 만들 필요가 있다. 프랑스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는 원래 군가(軍歌)였다. 고상하고 숭고한 내용 대신 살벌함이 가득하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기필코 이겨야만 우리가 살 수 있는 적을 향해 진군할 때 모두 다 같이 이런 노래를 부르면 떨리는 가슴이 진정되고 두려움이 사라지며 손이 불끈 쥐어질 것이다. 없던 힘이 나고 심장박동 수가 같아지고 가슴이 뜨거워질 수 있다. 합창의 매력 덕분이다. 모두가 힘이 들 때 다 함께 부르면 힘이 생기는, 그래서 모두가 하나 되는 그런 합창곡, 우리 회사에는 이런 노래가 있을까.

정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합창#조직#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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