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먼 길 돌아 꿈꾸던 일 찾아… 성공 멀었지만 가슴 설레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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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도전하라]<4>‘또래멘토’로 활약하는 장신구 디자이너 이나영씨

목걸이, 팔찌 등을 디자인하는 이나영 씨가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목걸이, 팔찌 등을 디자인하는 이나영 씨가 자신이 만든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모두가 같은 길을 걸어갈 필요는 없잖아요. 비록 성공담을 내세울 처지는 아니지만 다른 길을 찾는 이들에게 제 경험은 적게나마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올 7월 열린 ‘또래멘토’ 면접 현장. 부끄러운 듯 붉어진 얼굴에, 작은 체구의 20대 지원자는 네 명의 면접관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당시 동아일보 청년드림센터와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찾고 있던 또래멘토는 열정과 남다른 가치관으로 각종 편견과 실패를 딛고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는 이들이었다.

이 지원자가 이러한 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한 면접관들은 그를 또래멘토로 선발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이나영 씨(27·여)는 다른 18명과 함께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삶의 노하우를 함께 나누는 또래멘토가 됐다.

○ “대학졸업장 있어야 한다”는 어른말 거역못해

“저 미술 배우고 싶어요.”

이 씨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어느 날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 어렵게 자신의 꿈을 꺼내놓았다. 어릴 적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였지만 이를 전공 삼아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차마 하지 못했다. ‘학원 수강료에다 재료 구입비까지 적지 않은 돈이 들 텐데….’ 단지 하고 싶다는 이유로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홀로 이 씨를 키워온 아버지께 부담을 줄 순 없었다.

그러나 커져만 가는 바람을 계속 억누를 수는 없었다. 결국 이 씨는 아버지의 승낙을 받아냈다. 그렇게 미술 공부에 매진한 지 1년여. 서울에 있는 여러 대학의 디자인학과에 지원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모두 불합격한 것이다.

이 씨는 대입 준비에 한 해를 더 보냈다.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힌 그는 디자인학과 대신 동양화과로 방향을 틀었다. “동양화과는 경쟁률이 조금 낮았어요. 대학에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사회 통념을 깰 자신도 없을뿐더러 어릴 때부터 준비한 다른 친구들을 제칠 수 있다는 자신감도 부족했고요.”

이 씨는 2007년 초 서울의 한 4년제 대학 동양화과에 입학했다. 안에서 느낀 대학 분위기는 밖에서 볼 때와는 사뭇 달랐다. 그는 “학기 초 어떤 교수님이 ‘너희는 취업할 생각은 절대 하지 마라. 우리 학교는 작가 양성이 목표다’라고 말하는데 숨이 턱 막혔다”며 “다른 꿈을 꾸는 게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 후 몇 번씩 자퇴를 결심했다가 접는 날이 계속됐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왔는데 그만둔다고 아버지께 말하기가 너무 죄송해서였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이대로 가다가는 죽도 밥도 아닌 삶을 살 것만 같았다. 휴학을 하고 복잡한 머릿속을 비웠다. 이후 같은 대학의 의상디자인학과로 전공을 옮겼지만 결국 3주 만에 자퇴했다.

“무엇을 하든지 대학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던 어른들의 말을 거역하지 못해 이 상황까지 온 것 같았어요. 더 늦기 전에 마음을 다잡자고 다짐했지요.”

○ 유럽 각국 돌아본 후 각종 소품 들고 귀국

그 길로 이 씨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에 힘을 쏟기로 했다. 목걸이, 팔찌 같은 장신구를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일본 도쿄 여행 중에 거리마다 특색 있는 디자인의 장신구를 파는 이들이 참 많았어요. 그들을 보며 내가 갈 길은 이쪽이라고 확신했어요.”

이 씨는 그때부터 직접 디자인한 목걸이, 팔찌 등을 오프라인 매장 등에 내다 팔기 시작했다. 대학을 다닐 때보다 훨씬 흥미가 있었다. 빠져들수록 좀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단 생각도 들었다. 그 마음은 이 씨를 영국으로 이끌었다. 2012년 5월 런던에 있는 디자인학교인 센트럴세인트마틴예술디자인대를 찾아 각종 단기과정을 들었다. 그곳에는 자수, 목제 장신구 등 그의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다양한 과정이 마련돼 있었다.

그는 지난해 2월 한국에 돌아왔다. 런던에서 약 7개월의 시간을 보낸 뒤 3개월간 벨기에, 네덜란드, 독일, 스페인 등 유럽 각국을 돌아본 뒤의 일이다. 런던 등지의 전통시장, 벼룩시장을 돌며 모은 각종 소품 등을 가득 담은 캐리어도 함께 들고 왔다.

“가장 큰 수확은 자신감이에요. 수업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를 돌며 눈에 담은 풍경들을 앞으로 제가 디자인할 작품에 녹일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레요.”

그는 최근 ‘I make scone’이라는 인터넷 사이트(www.imakescone.com)를 세상에 선보였다. 영국인들이 즐겨 먹는 빵인 스콘처럼 다소 투박하지만 각종 사연이 담긴 장신구나 귀금속을 디자인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했다. “이제껏 정말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제가 진정으로 바라는 게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에 먼 길을 돌아왔지요. 대학 간판이 없어도 제 영역에서 굳건히 자리 잡는 모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또래멘토#장신구 디자이너#이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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