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돈 버는 투명인간’으로 사는 이 땅의 아버지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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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옳거니. 세상의 모든 아버지를 꼭 둘로 나눠야 한다면 하나는 스스로 가출을 꿈꾸는 아버지, 다른 하나는 처자식들이 가출하기를 꿈꾸는 아버지로 나눌 수 있었다. ―‘소금’(박범신·한겨레출판·2013년) 》

아버지들은 일을 한다. 그들의 삶이란 출근해 일하고 퇴근하는 하루들의 총합이다. 그 외의 시간에는 소파 위에서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거나 여행을 보채는 처자식을 차에 싣고 어딘가를 향해 운전을 한다.

아버지들에게 자신만의 욕망은 없다. 가족을 먹이기 위해 모든 욕망을 숨기고 오로지 돈을 번다. 푸릇하던 시절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즐겼는지에 대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늦은 밤 집에 돌아와 조용히 신발을 벗고 적막한 거실을 지날 때면 ‘대체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다가도 잠든 가족의 얼굴을 보며 퍼뜩 정신을 차린다.

소설 ‘소금’ 속에는 수많은 아버지가 나온다. 이들은 ‘돈을 버는 투명인간’으로 사는 인생에서 적극적으로 도망치려 한다. 자신이 버는 돈이 가족들의 물욕을 따라가지 못하는 게 두려워서, ‘가족’이라는 개념이 아버지를 제외한 아내와 자녀로 재편되는 게 불안해서 아버지들은 아버지의 역할을 벗어던지기로 한다.

가장이 아닌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아버지의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기도 한다. ‘소금’ 속 한 아버지는 자녀 교육을 위해 낯선 도시로 이사를 하자는 아내의 성화에 마음 깊숙이 숨겨뒀던 속내를 툭 내뱉는다. “치사해. 치사해. 치사해!” 아버지를 일개미로 여기는 가족에게 온 세상 아버지들을 대신해 일갈한 셈이다.

작가 박범신은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묻는다. “아버지가 번 돈으로 술 마시는 쟤네들, 쟤들 머릿속에 지금 늙어가는 아버지들이 들어 있겠어?” 아버지는 우리를 먹이기 위해 일을 하며 늙어 버렸다. 지금이라도 아버지를 ‘아버지’가 아닌 이름을 가진 한 사람으로 바라보자. 내 얼굴과 닮은, 기억과 꿈을 가진 한 명의 남자가 보일 것이다. 작고 거칠어진 그 남자의 손 부여잡고 참 감사했다는 말을 건네 보자.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소금#박범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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