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인증서-개인정보유출 등 문제 심각… 빨리 안고치면 英철도처럼 골칫덩이 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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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터넷 상용화 20년]<하>개발 주역 전길남 박사

지난달 18일 자택 서재에서 포즈를 취한 전길남 박사.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 박사는 “지금 같아선 한국은 인터넷 선도국가가 되기 어렵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난달 18일 자택 서재에서 포즈를 취한 전길남 박사.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라 불리는 전 박사는 “지금 같아선 한국은 인터넷 선도국가가 되기 어렵다”며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한국의 인터넷 상용화 20주년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KAIST 명예교수 전길남 박사(71)다.

재일교포 출신의 전 박사는 미국 유학 후 미 항공우주국(NASA) 등에서 근무하다 1979년 ‘해외 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 왔다. 연구 환경이 척박하기 짝이 없던 한국으로 온 이유는 고등학교 때 결심한, ‘고국에 돌아간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한국전자기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에서 컴퓨터와 네트워크 연구를 시작한 그는 1982년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한국에서 인터넷을 개발한다. 이후 KAIST에서 26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김정주 넥슨 창업자, 송재경 리니지 개발자, 허진호 아이네트 창업자, 정철 전 삼보컴퓨터 부회장 등 한국 인터넷 업계를 떠받친 인재들을 길러냈다. 그를 최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에서 만났다.

―전 교수가 없었다면 오늘날 인터넷 선도국가 한국은 없을 거라고들 얘기한다.

“글쎄…. 그게(인터넷 선도국가)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잘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우리 집사람은 인터넷이나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대해서 회의적이다. 사회가 더 이상해진다는 거다.(전 박사의 부인은 ‘대안 문화운동의 대모’로 불리는 조한혜정 전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조심은 해야 하지만 기술 발전은 잘해야 된다’는 게 내 생각이라면, 우리 집사람은 ‘잘해봤자 뭐가 있냐’는 생각이다. 무조건 좋은 건 없다. 생각을 잘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싱가포르나 홍콩, 대만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인터넷을 10년 앞서 (연결)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10년 이상 앞서가는 일을 하면 안 됐다는 생각이 요즘 든다. 예를 들어 온라인 게임은 좋은 면도 있지만 또 부작용도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이런 문제를 논의할 만큼 성숙이 안 됐다.”

―인터넷을 빨리 도입한 부작용이 크다는 뜻인가.

“앞서 나가는 게 무조건 좋은 건 아니란 뜻이다. 한 예로 영국 철도를 보자. 세계에서 철도를 가장 먼저 만들었는데 지금 영국 철도를 보면 자꾸 고장 나고 형편없다. 그런데 버릴 수도 없다. 우리는 나중에 철도를 들여왔어도 여러 나라의 좋은 점만 받아들여서 좋은 철도 시스템을 가졌다. 한국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먼저 시작하긴 했는데 그 후에 인터넷에 대한 활발한 논의나 수정 작업 없이 10년 전 시스템을 그대로 쓰고 있다. 예를 들어 공인인증서나 액티브엑스(ActiveX)에 대한 문제가 나와도 손을 못 댄다. 선진국이었다면 문제가 있으면 수정 작업을 했을 텐데 그게 안 되니 선진국이 아닌 거다. 그럼 한국의 인터넷이 어떻게 될까? 영국 철도같이 된다. 그렇게 안 되려면 버릴 건 버리고 수정할 건 수정해야 한다. 너무 늦으면 바꿀 수 없다.”

―인터넷에 대한 논의를 어떤 방향으로 가져가야 하나.

“국민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될 수 있게 하는 디지털 인프라를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성향은 세계 1등인 것만 좋아한다. ‘인터넷 강국’이란 말에도 강국인 것만 좋아하는 정서가 배어 있다. 선진국은 1등 얘기 안 한다. 오히려 문제인 걸 더 얘기한다. 우리 사회에서 세계 50등 밖에 있는 것이 있는지, 있다면 그걸 논의해야 한다.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 인터넷 관련 법이나 제도 부분은 형편없다. 세계 60, 70등 수준이다. 그런데 이 얘긴 안 한다. 브로드밴드 1위인 것만 말한다. 우리가 정말 인터넷 분야에서 앞서가는 나라라면 이제 인터넷 하드웨어를 얘기할 게 아니라 그 위의 애플리케이션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인터넷 그 자체보다 인터넷이 사회에, 안보에, 다른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핵심이라는 거다.”

―한국 인터넷의 가장 큰 문제점은….

“금융이다. 신용카드 관리 시스템이 문제가 많고 공인인증서도 심각한 문제다. 현재보다 2, 3년만 늦어도 비용이 너무 비싸져서 영원히 못 바꿀 것 같은데 이걸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안 보인다. 주민등록번호도 그렇다. 5000만 명 것이 다 나갔다는데 그럼 그 시스템 버려야지. 그런데 그거 계속 유지한다.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근본적인 문제를 논의할 사회적) 힘이 있느냐가 문제다.”

―최근 한국의 인터넷 역사를 책으로 집대성하는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안다.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인터넷을 다 쓰면서도 정작 이게 어떻게 생기게 됐냐고 물으면 컴퓨터공학 전공한 졸업생들도 잘 모른다. 누군가 제대로 역사를 기록해야 하는데 찾아보면 글만 몇 개 있고 내용도 정확하지 않다. 그래서 정확하게, 또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을 수 있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에겐 기록의 의무가 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부탁해 인터넷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던 인물들을 인터뷰하고 사실관계를 정확히 정리해 책을 썼다. 책은 4월에 나온다.”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공인인증서#개인정보유출#전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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