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기업들 체질 바꿔 재도약하는데… 한국은 저성장의 늪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펀드매니저가 본 日 성공사례]
미쓰비시 항공엔진 눈돌려 고성장… 연구개발비 투자 늘린 車 승승장구
경쟁사와 합병으로 경쟁력 강화도

“일본 기업들이 20년 불황을 딛고 다시 일어서고 있다.”

요즘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장기침체를 딛고 정부의 경기부양책 도움까지 받아 부활에 성공한 일본 기업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한일 롱숏펀드’를 운용하는 KB자산운용, 한국투자신탁운용(아시아포커스 롱숏펀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아시아 롱숏펀드) 등 3개 운용사의 펀드매니저들에게 최근 일본 기업들의 어떤 점이 투자매력을 일으키는지 평가를 요청했다.

한일 롱숏펀드는 삼성전자와 소니처럼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양국의 종목을 주로 분석해 투자한다. 그만큼 펀드매니저들은 눈에 불을 켜고 양국의 산업 경쟁력을 비교한다.

○ 변신, 또 변신

3사의 펀드매니저들은 한 달에도 서너 번 일본을 방문해 기업탐방에 나선다. 한동안 한국기업에 밀렸던 일본 기업들은 최근 과감히 체질을 개선해 다시 세계시장에 나서고 있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기존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해 ‘제2의 전성기’를 누리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선박수주 경쟁에서 한국 조선업체에 완패했던 미쓰비시중공업은 보잉, 에어버스 등에 엔진을 납품하면서 첨단 항공우주산업체로 변모했다. 디지털TV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 등에 밀리던 파나소닉은 항공기 내장재 생산 기업으로 탈바꿈했다. 김의년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 팀장은 “이 기업들의 경우 롱숏펀드 포트폴리오에 함께 담을 상대 종목을 한국기업 중에서 찾기 어려울 정도로 완전히 변신해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경쟁사와 합병을 택하는 사례도 있었다. 반도체 제조장비업체 세계 3위인 일본의 ‘도쿄일렉트론’은 최근 미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세계 1위 업체인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와 기업결합을 결정했다. 알렉스 모우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이사는 “일본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 부문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해 1∼8월 한국기업들이 280억 달러(약 29조6800억 원)어치의 차를 수출할 때 일본은 두 배인 559억 달러어치를 해외에 팔았다. 3사의 펀드매니저들은 “자동차의 경우 한국과 일본 업체 간 주가수익률 차이가 크게 벌어져 이제는 자동차 포트폴리오에 한국-일본 종목이 아니라 도요타-혼다처럼 일본-일본 종목을 담아야 할 판”이라고 입을 모았다.

자산운용업계는 일본 자동차 업체의 주가가 고공행진을 하게 된 비결이 기술개발에 있다고 본다. 엔화가치가 고공행진을 하던 2012년에도 도요타는 8000억 엔(약 8조2400억 원)에 이르는 연구개발비를 투자했다. 정병훈 KB자산운용 주식운용본부 부장은 “일본 자동차업체들은 일본 안에서 끊임없이 경쟁하면서 기술력을 끌어올렸고, 엔화 가치가 약세가 되자 세계 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 한국도 변해야 산다


일본이 한 번 걸어갔던 ‘장기 저성장’이라는 길을 걷고 있는 한국도 기업들이 역동적으로 대응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한국 기업들은 엔고 덕에 수출시장에서 각광을 받았지만 체질개선 노력은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의년 팀장은 “한국 수출업체의 최대 시장인 중국의 성장률이 둔화되고 있는 만큼 한국 산업계도 과감히 변화를 모색하거나 체력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수익성 악화 시름 韓 10대그룹
SK-LG제외 8곳 영업이익률 악화… “세계경제 변화에 대처 소홀한 탓”

삼성 현대자동차 등 대기업집단 계열사들의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재벌닷컴이 자산상위 10대 그룹 소속 84개 상장사(금융계열사 제외)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SK, LG을 제외한 8개 그룹의 영업이익률이 모두 악화된 것으로 집계됐다.

삼성그룹(13개사)은 지난해 매출이 8.8%, 영업이익은 6.6% 각각 늘었지만 영업이익률(매출액 대비 영업이익)은 10.5%로 전년보다 0.2%포인트 감소했다. 현대차그룹(10개사)은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동시에 감소하면서 영업이익률도 7.4%로 전년보다 0.6%포인트 내려갔다. 특히 삼성과 현대차그룹 소속 23개 상장사 가운데 삼성전자, 현대건설, 현대로템을 제외한 20개사는 모두 전년보다 영업이익률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철강, 조선 경기가 침체의 늪에 빠지면서 포스코(7개사), 현대중공업그룹(3개사) 역시 상장사들의 수익성이 떨어졌다. 한화와 롯데그룹도 영업이익률이 전년보다 각각 0.8%포인트, 0.3%포인트 하락했고 GS와 한진그룹은 영업이익이 2012년 흑자에서 지난해 적자로 반전됐다. 다만 SK그룹은 SK하이닉스의 실적 호조에 힘입어 영업이익률이 5.7%에서 10.8%로 크게 올랐고 LG그룹도 지난해 수익성이 소폭이나마 개선됐다.

국내 대기업의 수익성이 전반적으로 악화된 것은 일차적으로 글로벌 경기부진과 엔화 약세라는 일시적인 대외 악재 탓이 크다. 하지만 교역 둔화, 인건비 상승 등 세계경제의 중장기적인 흐름을 국내 기업들이 미처 읽지 못해 새로운 수익창출을 소홀히 한 결과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지홍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요즘 선진국들이 자국 내 생산을 중요시하며 수입을 억제하는 것이 한국 제조기업의 수출경쟁력 둔화로 이어지고 있다”며 “중국 등 해외 생산기지의 인건비가 오르면서 원가절감이 안 되는 것도 수익성 악화의 주된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이처럼 채산성이 낮아지는 것은 대기업만의 현상은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7∼9월) 상장·비상장 기업 1741개사의 매출액은 전년 동기대비 0.1% 줄었고, 영업이익률도 5.7%에서 5.1%로 떨어졌다. 기업들의 수익성 저하는 고용 둔화, 세수 감소 등으로 이어져 내수와 재정에 타격을 준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일본 기업#펀드매니저#미쓰비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