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30명만 잘 살펴도 마케팅 99% 보인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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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마음을 훔치려면

“벽돌 사이의 금까지도 스케치하라.”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 미술가이자 과학자인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남긴 말이다. 그는 좋은 그림을 그리려면 날마다 밖으로 나가서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고 자세하게 관찰해서 기록하라고 했다. 핵심은 관찰이다. 어떤 대상을 관찰하려면 일단 유심히 바라봐야 한다. 그래야 쉽게 보이지 않았던 게 보이고 새로운 영감이 떠오른다. 관찰은 마케팅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훔치려면 좀 더 의미 있는 것을 깊이 관찰해야 한다. 마케터들은 어떤 기준으로 소비자를 관찰해야 할까.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45호에서 마케터를 위한 관찰의 기준 5가지를 간추렸다.

○ 자신에게 없거나 불편한 것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불편을 느끼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구입한다. 그런데 자신이 어떤 것에 결핍을 느끼는지 스스로는 잘 모를 때가 많다.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결핍을 해결하면 수요는 저절로 생긴다. 생활용품 회사인 ㈜아이엔피가 개발한 ‘에디슨 젓가락’은 미처 깨닫지 못한 일상생활의 결핍을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다. 젓가락질을 처음 배우기란 쉽지 않다. 에디슨 젓가락을 개발한 박병운 사장은 여덟 살짜리 조카를 보고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 사실 젓가락질을 배우는 것은 어린이들을 괴롭혀 온 결핍 요소였다. 박 사장은 젓가락 끝을 나사로 잇고 손가락이 들어갈 수 있는 링 3개를 만들어 붙였다. 그렇게 하자 젓가락질을 할 수 있는 손가락의 자세가 쉽게 나왔다. 아이들은 에디슨 젓가락을 이용해서 젓가락질을 쉽게 배웠다. 관찰은 사람들의 결핍을 발견하고 제품의 가치를 높여 준다.

○ 육체적-정신적 고통 회피성향

일본의 문구 업체 고쿠요(KOKUYO)는 놀랍게도 철심이 없는 스테이플러인 하리낙스(Harinacs)를 개발했다. 고쿠요는 스테이플러를 사용하다 손에 철심이 박히는 상황을 관찰했다. 철심이 손에 박히면 매우 아프다. 이처럼 사람들의 육체적 정신적인 고통을 관찰하는 것은 더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사람들은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유니클로의 발열내의 히트텍은 출시되자마자 한국 등 동북아시아에서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히트텍 덕분에 유니클로의 모기업인 패스트리테일링은 2012년 매출액 12조 원, 순이익 1조 원을 기록했다. 유니클로는 고통을 관찰했다. 2008, 2009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전 세계 소비자들은 극심한 불황을 겪었다. 중요한 것은 경제적 불황보다 심리적 고통이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얼어붙은 경제 상황이 소비자의 심리까지 얼어붙게 만들고 더 춥게 느끼도록 했다. 히트텍은 어쩌면 물리적인 발열 기능보다는 심리적인 발열 기능이 더 강력한 제품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추위를 이전보다 더 느끼는 상황에서 몸이 따뜻해진다는 히트텍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 불분명한 대상에 대한 공포

누구나 불안을 느끼며 산다. 불안은 분명하지 않은 대상에 대해 갖고 있는 심리적 공포다. 그런데 불안을 관찰하면 새로운 수요를 만들 수 있다. 현대자동차는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급증하던 2009년 1월 현대차를 구입한 소비자가 1년 내에 실직하면 판매한 차를 되사 주는 ‘실직자 구매 보상 제도’를 선보였다. 이 프로그램은 미국 중산층에게서 큰 인기를 끌었고 2009∼2010년 미국에서 현대차의 매출 급증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의 경제 신문 월스트리트저널은 ‘실직자 판매 보상 제도’를 ‘2009년 최우수 광고’에 선정했다. 뉴욕타임스는 마케팅의 백미라고 치켜세웠다. 사실 현대차가 실직자의 차를 되사 준 사례는 350대 정도에 불과했다. 성과는 높았고 비용은 낮았다. 현대차는 소비자가 느끼고 있던 불안을 관찰했고 여기서 도출된 아이디어로 높은 성과를 내게 됐다.

○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포착

시대는 늘 변한다. 그래서 변화의 길목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면 성공의 기회를 잡을 확률이 높아지게 된다. 최근 변화는 싱글세대 및 실버세대의 증가, 향수(鄕愁) 마케팅의 증대, 피곤함과 외로움의 배가, 저성장 경기의 장기화 등이다. 싱글세대는 계속 늘어난다. 그래서 이들의 행동 특징을 관찰한다면 새로운 시장 기회를 찾을 수 있다. 동부대우전자는 싱글세대를 위한 벽걸이 세탁기를 만들었다. 많은 가전회사가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이 회사가 국내 인구 구조의 변화를 읽고 가장 먼저 싱글세대를 위한 세탁기를 내놓았다. 벽걸이 세탁기는 시장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싱글세대가 늘면 이들이 거주하는 소형 아파트와 원룸이 증가할 것이다. 혼자 사는 작은 집에 어떤 세탁기가 들어갈 수 있을까? 당연히 크기가 작은 벽걸이 세탁기가 소비자의 호평을 받을 수밖에 없다.

○ 제품을 쓰는 소비자의 행동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불편해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다. 오직 행동만으로 자신의 불편함을 표현한다. 마케터들이 의미 있는 발견을 하려면 먼저 소비자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보일러 광고에서 가장 반향이 컸던 광고 중 하나가 경동보일러의 광고다. 이 광고는 광고인으로는 유일하게 대통령 표창을 받은 1세대 광고인 이강우 씨가 제작했다. 이 씨는 경동보일러의 광고를 의뢰받은 뒤 제품의 특장점을 살펴봤으나 경쟁사 제품과 뚜렷하게 구분되는 특장점이 없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광고인들은 대체로 소비자의 심리적 요인을 찾아 이를 제품에 연결하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 씨는 보일러를 구매하는 사람들을 3일 이상 관찰했다. 하지만 딱히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재래시장의 보일러 가게에서 신혼부부를 발견하고 그들을 따라 가게로 들어갔다. 신혼부부는 자기들끼리 말을 나눴다. “여보, 날도 추워지는데, 시골에 계신 아버님, 보일러나 하나 바꿔 드리자.” 시골에 계신 부모님 댁에 보일러를 바꿔 드리려는 효자, 효부의 대화였다. 보통 사람들은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하지만 이 씨는 번뜩하고 풀리지 않던 문제가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광고 카피가 코미디언들이 차용해서 사용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하나 놓아 드려야겠어요’라는 문구다. 광고인 이 씨는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했다.

○ 트렌드는 바로옆에 있다

통계학 개념인 중심극한정리(Central Limit Theorem)에 따르면 개체가 30개 정도면 이들의 특성은 정규분포를 따르게 된다. 이 이론을 소비자 관찰에 적용하면 30명의 의견과 반응만 차근차근 살펴봐도 대부분 소비자의 결핍을 찾아내는 데 문제가 없다. 한국은 지역별로 트렌드가 크게 다르지 않고 국민 대부분이 동일한 트렌드를 좇는 동질성이 강한 나라다. 그냥 하나의 시장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소비자 30명에게만 제대로 물어보면 정답의 99%는 알아낼 수 있다. 소비자의 행동을 관찰해서 결핍을 찾아냈다면 30명에게 물어보라. 이들의 의견만 잘 살펴도 한국의 트렌드를 읽을 수 있다.

신병철 스핑클그룹 총괄대표
정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마케팅#소비자#트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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