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개선, 호남권 부진… 지역경기 ‘北高南低’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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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韓銀 ‘7~8월 지역경제 보고서’ 발표

울산에서 석유화학 대기업 L사의 1차 협력업체를 17년째 운영해온 이모 대표는 최근 시름이 깊어졌다. L사가 수출 물량이 줄었다며 납품단가를 15% 낮춰달라고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중국의 경쟁업체들이 지난해부터 대규모 설비투자를 하고 세계시장에 제품을 대거 쏟아내면서 L사의 수출이 눈에 띄게 줄었고 협력업체에도 불똥이 튀고 있는 것이다. 이 대표는 “올해 이익이 작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 것 같다”며 “석유화학산업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내년에는 더 걱정”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한국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영호남 지역의 기업들이 수도권 지역 기업들에 비해 경기 침체가 더 심각하다고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은행이 28일 발표한 ‘지역경제 보고서’에 따르면 7∼8월 수도권, 충청권, 강원권, 제주권의 경기는 2분기(4∼6월)에 비해 완만하게 개선되고 있었다. 하지만 대구·경북권, 동남권(부산 울산 경남), 호남권은 회복세가 미약하거나 여전히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는 한은의 16개 지역본부 직원 150여 명이 700여 기업과 협회 등을 심층 면담하고 5000여 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다.

○ 지역 경기 ‘북고남저(北高南低)’

한은 보고서에 따르면 지역 경기는 충청권을 기점으로 ‘북고남저(北高南低)’ 현상이 뚜렷했다.

전라남북도 등 호남권은 7∼8월 제조업, 서비스업 모두 부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호남권 경제를 먹여 살리는 조선업이 침체를 겪고 있고 유럽 수출 비중이 높은 자동차 제조업도 부진했기 때문이다. 대형 컨테이너선을 중심으로 조선업 경기가 바닥을 쳤지만 호남권은 일반 상선을 만드는 중소형 조선사가 대부분이어서 혜택을 받지 못했다.

동남권과 대구·경북권도 주력 업종인 철강, 자동차, 석유화학산업의 부진으로 경기 침체가 계속됐다. 특히 철강의 경우 세계시장에서 여전히 공급과잉 상태인 데다 전력난을 겪으며 아예 생산 라인 가동을 중단하고 설비 보수에 들어가기도 했다.

반면 스마트폰 등 정보기술(IT) 업종을 주력으로 하는 수도권과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패널을 앞세운 충청권의 경기는 회복세를 나타냈다. 삼성, LG가 새로운 스마트폰을 시장에 내놓자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 등 스마트폰 부품의 국내외 수요도 늘어났다. 충청권의 경우 숙박, 음식점 등 서비스업이 세종시 효과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 해외 악재, 지역경제 기상도 갈라

한은은 중국의 경기 둔화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돈줄 죄기) 등 해외 악재가 주는 타격도 지역별로 다를 것으로 예측했다.

대구·경북권과 호남권 기업들은 다른 지역에 비해 중국 경기 둔화에 따른 수출 감소의 영향을 더 크게 받을 것으로 예상했다. 이 지역에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석유화학과 철강산업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미국 경기가 회복되고 있다는 방증이어서 IT산업의 비중이 큰 수도권 기업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의 엔화 약세는 일본인 관광객 감소로 이어져 수도권과 동남권의 서비스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한편 경기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호남권과 동남권에서도 취업자 수는 늘어나는 생산-고용의 괴리 현상도 나타났다. 신운 한은 조사국장은 “복지 분야 취업자나 정부 일자리가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고용 상황이 전반적인 경기 상황과는 괴리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수도권#호남권#지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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