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석유와의 전쟁선포에 앞서 왜곡된 에너지 세금체계 개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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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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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문가들 중장기대책 촉구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지하경제 양성화’의 최우선 과제로 연간 1조7000억 원의 세금이 탈루되는 가짜 석유 근절을 천명한 것과 관련해 에너지 업계와 학계에서 에너지 관련 세금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세수(稅收) 확보’라는 단기적 목표에 맞춰 중구난방으로 짜인 에너지 세제를 바로잡지 않은 채 가짜 석유 단속을 강화하고 에너지 절약을 강조하는 건 소비자들에게 ‘비(非)경제적 소비’를 강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특정 에너지원에 몰린 소비구조를 바로잡고 ‘친환경’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부합하는 정책기조를 마련하기 위해서도 에너지 세제개편이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 ‘누더기’ 비판 받는 에너지 세제

주요 연료에 붙는 세금은 천차만별이다. 6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소비자가격의 50%가 세금인 휘발유에는 L당 907.31원, 경유에는 675.94원의 세금이 붙는 반면 택시, 장애인 차량에 주로 쓰이는 액화석유가스(LPG)에는 137.14원, 난방용 연료이자 가짜 경유의 원료로 쓰이는 등유에는 206.54원이 매겨진다. 가짜 휘발유 첨가물인 벤젠 등 용제(溶劑)에는 별도 유류세 없이 부가가치세만 75.76원이 붙는다.

가격 대비 세금 비중은 편차가 더욱 커 경유는 소비자가격의 41%가 세금이지만 LPG는 29%, 등유는 18%만 세금이다. 시내버스 등에 사용되는 수송용 액화천연가스(LNG)는 14%가 세금이고 전기는 용도에 따라 8∼12%에 불과하다.

2000∼2007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마련된 현행 제도는 세수를 확보하고 매연 배출의 주범인 경유 소비를 줄이면서 상대적으로 깨끗한 연료인 가스 소비를 확대하는 게 주요 목적이었다.

문제는 이런 논리가 시간이 흐르며 퇴색했다는 점이다. ‘매연의 대명사’였던 경유는 클린디젤 엔진 개발이 가속화되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친환경 연료’로 거듭나고 있다. 반면 LPG는 승용차나 다름없는 일부 승합차와 경차, 렌트카 등에 광범위하게 쓰여 ‘특수 용도에 쓰이는 연료’라는 성격이 줄었고 온실가스인 메탄가스 배출이 많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전기의 경우 세금이 낮고, 물가관리를 위해 요금 상승이 제한되다 보니 냉·난방용 소비가 크게 늘어 여름·겨울마다 전력난이 발생하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정부가 왜곡된 에너지 세제와 보조금 제도를 유지하는 바람에 효율이 낮고 해외에서 수입해야 하는 LPG의 소비만 늘어나고 있다”며 “가짜 석유를 단속하자면서 정작 선행돼야 할 에너지 가격정책 재수립에 대해 당선인과 인수위가 손을 놓고 있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비판했다.

○ 가짜 석유·에너지 과소비 막을 세제개편 필요

전문가들은 가짜 석유 관리 강화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가짜 석유를 만들 유인을 없애고 에너지 과소비를 막을 수 있게 세금정책을 다시 짜야 한다고 지적한다. 단속 강화와 함께 가짜 석유 원료인 등유와 용제의 세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서민층의 난방비 부담이 커지는 등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가짜 석유의 폐해가 크다면 과감한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가짜 석유는 휘발유, 경유의 세금이 다른 에너지에 비해 지나치게 높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틈새시장을 차단하려면 세금 차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에서 개인들의 승용차 이용을 줄이기 위해 전체적인 세율 인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휘발유를 담배, 술과 같은 ‘외부 비경제’(다른 사람에게 의도하지 않은 손해를 입혀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것) 항목으로 보고 세금을 높게 책정하는 게 세계적인 흐름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명박 정부에서는 도입하지 못했지만, 탄소 배출이 많은 연료에 높은 세금을 부과하는 ‘탄소세 제도’를 박근혜 정부에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성명제 조세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에너지는 근본적으로 소비를 억제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해야 하는 품목”이라며 “에너지 세금을 높여 대중교통 인프라를 구축하거나 에너지 복지를 강화하는 데 써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에너지#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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