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여성부, 그럼 이렇게 재미없는 게임 원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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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산업부 기자
김상훈 산업부 기자
게임 개발자 13명이 지난 주말 한자리에 모였다. 게임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들은 일요일까지 꼬박 바쳐 가며 무보수로 게임을 완성했다. 그렇게 만든 게임이 좀 특이했다.

완성한 4개 가운데 1등의 이름은 ‘인생은 시궁쳇바퀴’. 룰렛을 돌려 10억 원을 버는 게 목표인 게임이다. 하지만 룰렛 위에는 교통사고와 주식 폭락, 대출이자, 사기 같은 부정적 표현만 가득했다. 게임을 시작하면 돈을 잃기만 했다. 100% 절망하게 되는 ‘재미없는 게임’이었다.

이런 형편없는 게임은 여성가족부가 최근 공개한 ‘게임물 평가계획 평가표’에 항의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표에 따르면 게임하는 사람들끼리 협력하면 ‘강박적 상호작용’을 부추긴다. 친구들과 점수를 겨루면 경쟁심이 유발되고, 레벨 업은 ‘과도한 보상’에 해당한다. 게임의 기본을 모두 부정한 셈이다. 개발자들은 이 기준에 따른 최고의 게임을 만들었다. 여성부 기준으로는 완벽하지만 가장 재미없는 게임 말이다.

최근 미국에선 ‘오크 상원의원 후보’가 화제가 됐다. 메인 주 상원의원 선거에서 콜린 라호비치라는 48세 여성이 민주당 후보로 나서자 공화당 측이 “밤이면 게임 세계에서 살육을 벌이는 여성”이라며 그를 비난했다. 라호비치 후보는 월드오브워크래프트라는 게임 속에서 가상의 괴물 ‘오크’ 역할을 즐겼는데 게시판에 “나는 독살하고, 칼로 찌르는 일을 사랑해요!”라는 글도 남겼으니 문제가 있다는 얘기였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현재 매달 900만 명 이상이 사용료를 내고 접속하는 세계 최대의 온라인 게임이다.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까지 합하면 수천만 명에 이른다. 공화당은 이들 모두를 게임 속 괴물로 치부하는 우(愚)를 범했다. 공화당 지지자들도 “정치적 견해는 다를지 모르지만 내 동료 ‘호드’가 이런 식으로 대접받는 건 참을 수 없다”고 비난했다. 호드는 이 게임 속 동맹세력의 이름이다.

게임은 중독성이 있다. 공감각적 경험 때문에 중독성이 다른 취미보다 더 강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동시에 게임은 그 어떤 작품보다 더 몰입하게 만드는 예술이고, 협력을 배우는 공간이며, 공정한 경쟁의 룰이 존재하는 세계이기도 하다.

미국의 어른들은 록 음악이 인기를 끌고 히피들이 돌아다니자 ‘악마의 음악’이라고 비난하면서 혀를 찼다. 한국에서도 세시봉 세대가 인기를 끌고 장발이 유행하자 이를 퇴폐적이라고 하는 어른들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때의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 자신의 아이들을 탓한다. 게임 한 번 해보지도 않고서.

김상훈 산업부 기자 sanhkim@donga.com
#경제카페#김상훈#여성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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