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싱 피해자 내가 접한 사람만 2020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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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이스피싱 피해자 단체 만든 美변호사 이준길 씨

2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보이스피싱 및 해킹으로 인한 금융피해자 단체’ 사무실에서 만난 이준길(오른쪽), 조은석 공동대표. 수년간 보이스피싱 범죄가 지속됐지만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자 평범한 금융전문가와 사업가가 활동가로 변신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8일 서울 강남구 논현동 ‘보이스피싱 및 해킹으로 인한 금융피해자 단체’ 사무실에서 만난 이준길(오른쪽), 조은석 공동대표. 수년간 보이스피싱 범죄가 지속됐지만 금융당국과 금융회사가 뾰족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자 평범한 금융전문가와 사업가가 활동가로 변신했다. 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007년부터 6년간 4만여 건, 피해액 4000억 원.’

하루에만 18건이 발생했고 피해액은 하루 평균 2억 원가량이나 된다. 자기 실수 탓으로 돌리고 신고하지 않는 사례도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피해는 더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 교통사고가 아닌 보이스피싱 피해 수치다.

피해 대상도 법원장부터 노인, 주부 등 지위고하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보이스피싱 범죄집단은 경찰과 검찰, 법원, 금융감독원 등 끊임없이 정부 당국을 사칭하는데도 정작 정부와 금융회사는 소비자 책임이라는 말만 하고 있다. 정보기술(IT) 강국이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은 나라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미국변호사 이준길 씨(56)가 보이스피싱 피해 손해배상 소송에 적극 나서게 된 이유다.

○ 금융전문가에서 보이스피싱 전문가로

이 씨는 사업가인 조은석 씨(42)와 함께 지난달 말 ‘보이스피싱 및 해킹으로 인한 금융피해자 단체’를 세우고 공동대표를 맡았다. 2500여 명이 가입한 네이버 카페 ‘보이스피싱 금융피해자 모임’에서 만난 100여 명이 회원으로 합류했다. 이 단체는 1차로 14일 신용카드사 등 24개 금융회사를 상대로 66명의 카드론 보이스피싱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이 씨는 미국에서 유학한 뒤 영주권을 얻어 현지 보험회사에서 근무했다. 이후 한국에서 1998∼2002년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국제금융 전문위원으로 일한 뒤 2002∼2004년 KB부동산신탁 부사장을 지냈다. 2005년부터 로스쿨에 들어가 미국변호사가 됐다.

하지만 이 씨는 이 단체 운영위원 10명 중 유일하게 보이스피싱 피해자가 아니다. 그는 “지인 중 보이스피싱으로 5000만 원가량 피해를 본 사례가 있어 관심을 갖게 됐다”고 했다. 이어 “카페에 가입한 뒤 피해자 2020명의 사례를 보고 쇼크를 받고 화도 났다”며 “하나같이 수천만 원씩 피해를 본 걸 보고 이게 어떻게 금융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 외국계 회사 상대로 미국에서 소송

그는 문제를 크게 두 가지로 보고 있다. 먼저 미국에서는 인터넷뱅킹이 있지만 개인은 한국처럼 타행 이체를 손쉽게 할 수 없다. 이유는 보이스피싱이나 해킹 피해에 대해 금융기관에서 책임을 지게 했기 때문이다. 미국 은행들은 특별한 사유가 없다면 개인에게 인터넷뱅킹을 허가하지 않는 방법으로 책임을 피해 간다.

또 미국에서는 1회 이체한도가 500달러로 액수가 크지 않다 보니 범죄 유인도 적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체한도가 보통 하루 5000만 원이며 보안 서비스에 등록하면 최대 5억 원까지 가능하다.

그는 “한국이 벤치마킹한 미국의 전자금융거래는 보이스피싱 등의 피해를 본 고객이 2일 이내에 신고하면 고객은 50달러만 책임지면 된다”며 “은행들이 인터넷뱅킹 이체 수수료를 올려 무분별한 이용을 줄이는 대신 그 재원으로 금융회사가 보이스피싱 등 피해에 대한 보상을 100% 다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그는 외국계 금융회사들을 상대로 미국 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카페 회원 중 피해자가 30여 명에 이르는 한국씨티은행과 HSBC, 스탠다드차타드(SC), 푸르덴셜, AIG 등이다. 한국과 미국의 금융회사가 별도 법인이더라도 한국에서 이익금을 가져가고 미국 법인에 임명 권한이 있으면 실질적으로 지휘하는 것이므로 소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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