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 제품의 안전성을 테스트하는 데 일본기업이 두 달 걸린다면 한국기업은 일주일이면 가능합니다. 우리의 경쟁력이죠.”
2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UL코리아 사무실. 이 회사의 류신환 배터리팀장(38)은 2차전지 후발 주자인 한국기업이 훨씬 앞서가던 일본을 앞지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로 제품의 안전성 인증기간을 꼽았다. 대표적인 2차전지인 리튬이온전지를 생산하는 삼성SDI와 LG화학의 세계시장 점유율을 더하면 지난해 39%로 처음으로 일본 기업(35%)을 앞질렀다.
한국의 KS와 비슷한 개념의 UL 인증은 북미시장에 수출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으로 유럽 및 중국시장 등에서도 통용된다.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는 노트북 등에 들어간 리튬이온전지의 폭발사고로 기업이 큰 피해를 입자 안전성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류 팀장이 지속적인 투자 및 한국식 스피드 경영과 함께 상대적으로 짧은 인증기간을 한국기업의 경쟁력으로 꼽은 것은 연구개발 시간을 확보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애플이 자사(自社) 제품에 필요한 리튬이온전지를 개발해 달라고 요구하면 한국 회사들은 인증기간이 짧아 일본기업보다 한 달 반 이상을 연구개발에 더 사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일본기업은 2차전지 부품인 셀은 미국에서, 팩은 대만에서 안전성 검사를 받는데 한국기업은 국내에서 모든 절차를 밟는다. 이렇게 된 데는 류 팀장의 역할이 컸다. LG화학에서 2차전지 연구원으로 일하던 그는 2005년 UL코리아로 이직한 뒤 국내에서 모든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류 팀장이 한양대 공대를 다녔던 1990년대엔 반도체 분야로 진출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는 “한 교수님이 소니 ‘워크맨’에 들어 있던 니켈 배터리를 보여주면서 ‘향후 2차전지가 산업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강의를 했는데 인상적이었다”며 “그 강의가 반도체회사 입사를 준비하던 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LG화학의 2차전지 연구원이던 그가 UL코리아로 이직한 것은 제품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만들어 보고 싶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류 팀장은 “과거에는 2차전지의 글로벌 표준을 정하는 국제회의에 일본기업만이 참여해 자신들에게 유리한 표준기술을 제시했다”며 “2006년부터는 내가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내기업들과 함께 회의에 참석하면서 한국기업의 입장도 반영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류 팀장은 세계 26개국, 1만여 명의 UL 직원 중 아시아에서는 몇 안 되는 최우수 엔지니어로 선발됐다. 또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에서 한국인 최초로 2차전지의 안전성 분야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반도체가 ‘산업의 뇌’에 해당한다면 액정표시장치(LCD)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은 ‘눈’에 해당한다. 한국기업들은 이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다. 이에 더해 ‘산업의 심장’에 해당하는 리튬이온전지 등의 2차전지 분야도 이제 일본과 본격적으로 경쟁할 수 있는 수준에 올라섰다는 게 류 팀장의 분석이다.
그는 “2차전지 경쟁의 본격적인 승부는 휴대전화나 노트북이 아니라 전기자동차와 대용량 에너지저장장치(ESS)”라며 “대용량 2차전지의 시장 규모는 2020년이면 최대 1000억 달러(약 113조5000억 원) 수준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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