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출구전략 ‘매몰비용 늪’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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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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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합운영비 등 회수 불가능 비용, 수도권 10곳 평균 14억

2009년 11월 조합을 설립하며 재개발 사업을 추진하던 경기 수원시 세류동 권선 5구역 재개발조합. 당초 아파트 650채를 지을 계획으로 시공사까지 선정했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가 발목을 잡았다. 분양가 등을 산정하는 기준이 될 감정평가액이 낮게 책정되자 조합원 간 갈등이 발생하면서 사업 추진이 난항을 겪기 시작한 것. 결국 뉴타운 출구전략에 따라 사업 중단을 결정하고 올해 5월 수원시로부터 조합 설립인가 취소 결정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에 돌발변수가 생겼다. 시공사로 선정됐던 삼성물산이 조합에 빌려준 돈 41억 원을 갚으라고 요구한 것. 이 돈은 그동안 조합 운영비 등으로 사용된 매몰비용이었다. 전문가들은 조합원들이 그만한 자금을 동원할 능력이 없어 법적 분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업 추진이 더딘 재건축·재개발 사업을 중단하는 이른바 뉴타운 출구전략이 본격화되면서 매몰비용이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사업 진척 정도와 지역에 따라 매몰비용 규모는 차이가 크다. 추진위 단계에서는 운영비, 회의비, 업무추진비, 인건비 정도만 지출해 비용이 수억 원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조합까지 설립되면 각종 용역비용까지 더해져 규모가 커진다.

○ 뉴타운 중단하려 해도 ‘돈’이 걸림돌

2010년 이전에 추진위·조합이 설립됐지만 사업 속도가 더딘 서울 성북구 장위 9구역, 용산구 효창 제5구역, 종로구 신영 제1구역, 인천 중구 송월구역 등 수도권 10개 재개발지역을 대상으로 최근까지 지출한 비용을 분석한 결과 141억 원으로 집계됐다. 구역당 평균 14억1000만 원이 든 셈이다.

추진위원회 단계인 3곳은 지출비용인 10억 원 이하였지만 조합까지 설립된 곳은 수십억 원인 곳이 여럿이었다. 조합원이 1900명에 이르는 인천 화수화평 구역은 비용만 40억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장위 9구역(30억 원) 효창 5구역(20억 원) 등도 수십억 원의 비용이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들의 실제 운영비용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매몰비용의 상당 부분을 조합원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속도가 나지 않는 사업에 애가 타는 조합원들은 매몰비용에 대한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수도권의 한 재개발조합 관계자는 “조합원 중에 매몰비용 문제만 해결되면 사업을 접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매몰비용’에 대한 대책을 확실히 세우지 않은 채 출구전략을 밟고 있는 지자체에 대한 불만도 나왔다. 수색 4구역 관계자는 “아직 매몰비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방법이 나오지 않은 채 사업을 접을 곳은 접으라니 다들 어수선하기만 할 뿐”이라고 울분을 감추지 않았다.

○ 매몰비용 폭탄 터질 곳 많다

현재 서울시는 뉴타운 출구전략을 위해 실태조사를 벌이고 있다. 수원에 이어 서울에서도 추진위·조합이 설립된 곳이 구역 해제에 나서게 되면 매몰비용으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게 불어닥칠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는 일단 추진위원회가 결성된 지역에 대한 매몰비용을 어떻게 처리할지를 정하는 조례 제정 작업에 돌입해 이르면 다음달 조례 개정안을 내놓을 방침이다.

문제는 추진위 과정을 넘어서 조합을 설립한 곳이다. 조합의 경우 추진위와 달리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매몰비용 지원에 대한 근거 규정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수도권의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구역은 총 1130곳. 이 중 정비구역 단계인 곳이 187곳, 추진위 단계인 곳이 289곳, 조합이 설립된 곳이 296곳 등 사업시행인가를 받기 전인 곳이 772곳에 이른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국토해양부도 매몰비용 지원에 대해서는 난색을 표한 상황이라 지원 근거가 마련되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당분간은 매몰비용의 책임소재를 두고 지역별로 혼선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전했다.
:: 매몰비용 ::

이미 써버려 회수할 수 없고, 해당 사업의 미래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비용. 돈을 들여 신제품 광고를 했는데 그 제품 출시가 불가능해진 경우 해당 광고비는 매몰비용인 셈이다.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매몰비용#뉴타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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