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정부때 폐기된 순환출자 금지 법안 베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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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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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누리 ‘가공의결권 제한’ 추진에 재계 강한 반발

민주통합당에 이어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이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가공(架空)의결권’을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하기로 하면서 ‘순환출자’ 문제가 정치권 경제민주화의 주요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권은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에 기업들은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가 이뤄지면 경영권 방어에 어려움이 커지고 투자도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한다.

새누리당 경제민주화실천모임이 31일 내놓은 순환출자 규제 방안은 대기업집단(그룹)의 신규 순환출자는 금지하되 대기업들이 이미 갖고 있는 기존 순환출자 지분에 대해 의결권만 제한한다는 점에서 지난달 민주통합당이 당론으로 채택한 방안과 차이가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12일 기존 순환출자에 대해서도 3년간의 유예기간을 주고 모두 해소하도록 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현재 자산 5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대기업집단 가운데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그룹은 모두 15곳으로 총 87개 계열사가 100개의 순환출자 관계를 맺고 있다.

남경필 새누리당 의원은 “야권에서 주장하는 순환출자 전면 금지는 위헌 가능성이 있고 주식시장 붕괴까지 불러올 우려가 있다”며 “순환출자를 제한하지 않고 가공의결권을 제한하는 방안이 상법의 (상호출자) 규제 논리와도 조화를 이룬다”고 말했다.

하지만 재계는 새누리당의 가공의결권 제한 방안이 민주당 안과 별 차이가 없다고 본다. 신석훈 한국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대기업들이 순환출자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결권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며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 않아 속단하긴 이르지만 의결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민주당 방안과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특히 재계는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경제민주화 바람에 편승해 노무현 정부 당시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이 내놨다가 폐기된 법안의 뼈대를 그대로 차용했다고 비판한다. 2005년 열린우리당 채수찬 의원은 신규 순환출자를 금지하고 기존 순환출자 의결권을 매년 10분의 1씩 제한해 10년 만에 의결권 행사를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제출한 바 있다.

당시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부처들이 반대했고, 열린우리당이 출자총액제한제 완화를 당론으로 채택하는 등 대기업 규제 완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이 법안은 무산됐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 법안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사실상의 재벌해체 방안’이라는 점 때문에 도입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는 가공의결권 제한이 현실화되면 경영권 방어수단이 없어진다는 점을 우려한다. 미국과 유럽의 주요국들은 단 한 주만 보유해도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동의권부 주식(황금주)’, 경영권 위협이 있을 때 기존 주주가 싼값으로 신주를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신주인수선택권’ 등 기업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항할 수 있게 하는 다양한 제도를 갖추고 있는 반면에 한국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공의결권의 50%를 제한할 경우 삼성전자는 삼성SDI 보유 지분 20.4%의 절반, 현대자동차는 기아자동차 보유 지분 33.9%의 절반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공정위 역시 순환출자 의결권 제한에 사실상 반대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투자 위축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수직계열 구조나 지주회사 구조에서도 가공의결권이 있는데 정치권이 ‘순환출자는 무조건 나쁘다’는 선입견에 따라 원칙 없이 순환출자를 규제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새누리당#가공의결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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