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공정거래 강화만”… 정치권은 “지배구조 개선도”

  • Array
  • 입력 2012년 7월 30일 03시 00분


코멘트

경제민주화 과제 물었더니… 극명한 ‘政經괴리’

여당과 야당, 대기업과 중소기업 등 각 응답군(群)이 그려 제출한 경제민주화의 윤곽은 모양이 크게 달랐다.

정치권이 보는 경제민주화는 ‘크고 넓었다’. 반면 기업인들은 ‘공정거래 강화’로 좁게 경제민주화를 보고 있다. 정치권 중에서도 새누리당은 복지정책에 방점을 둔 반면 민주통합당 등 야당은 재벌 개혁과 노동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 새누리당 “경제민주화는 양극화 해소”

동아일보가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경제민주화 법안을 주로 다룰 국회 3개 상임위원회 소속 의원 41명은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일감 몰아주기 근절, 하도급거래 개선 등 ‘공정거래 강화’와 중소기업 적합 업종 지정, 골목 상권 보호 등 ‘소상공인·중소기업 보호’가 경제민주화의 과제에 해당한다고 봤다.

그러나 3순위 과제부터는 당에 따라 답변이 갈렸다. 새누리당 의원들은 경제민주화는 양극화 해소나 일반적인 정부의 시장 개입과 크게 다르지 않은 개념이라는 인식을 드러냈다.

새누리당에서 공정거래 강화, 소상공인 및 중기 보호 다음으로 찬성률이 높았던 경제민주화 과제는 저소득층 지원 강화, 균등한 교육기회 제공 등 ‘복지정책’(90.0%)이었다. 이 항목에 대한 야당 의원들의 찬성률은 61.9%로 새누리당과는 30%포인트 가까이 격차가 났다.

물가 관리와 경기 부양 등 ‘일반적인 시장 개입’ 항목에 대한 찬성률도 새누리당(45.0%)이 야당(28.6%)보다 더 높았다. 새누리당 의원 30.0%는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고 규제를 개선하는 등 노동·금융시장을 합리화하자는 항목도 경제민주화 과제에 해당한다고 봤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지난달 대한상공회의소를 방문한 자리에서 경제민주화의 방향에 대해 “자유시장경제 질서의 기본 틀은 유지해야겠지만 빈부 격차의 해결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 야당은 “재벌 개혁과 비정규직 보호”

야당이 보는 경제민주화는 재벌 개혁과 일자리 문제에 좀 더 선명하게 밑줄이 그어져 있다. 야당에서 공정거래 강화와 소상공인·중기 보호 다음으로 찬성률이 높았던 항목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고용 지원 등 ‘노동정책’(90.5%)이었다.

순환출자 해소,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등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야당 의원 81.0%가 ‘경제민주화의 과제’라고 호응했다. 새누리당은 50.0%였다. 이해찬 대표가 “재벌 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는 허구”(11일 최고위원회의), 박지원 원내대표가 “재벌 개혁 없는 경제민주화는 생각할 수 없다”(16일 경제단체 부회장들과의 면담)고 강조하는 등 민주당 지도부의 견해도 명확하다.

부유세 도입, 법인세 및 상속세 인상 등 ‘과세 문제’에 대해서도 야당 의원은 61.9%가 강화해야 한다는 데 찬성했으나 새누리당 의원은 35.0%만 동의했다. 민주당이 9일 발의한 ‘경제민주화 실현을 위한 9개 법률 개정안’도 그 뼈대가 재벌 개혁과 부자 증세라는 평가를 받는다. 금융자본 규제에 대해서도 야당 의원은 71.4%가 ‘경제민주화에 해당한다’고 답한 반면 새누리당 의원은 35.0%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야당 의원들은 새누리당 의원들에 비해 경제민주화에 대해 내부 이견(異見)이 적었다. 한 민주당 의원은 설문에 응하면서 “우리는 당론이 있어 대부분 비슷한 답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 기업들 “공정거래 강화만 해당할 뿐”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 경제민주화를 선뜻 수긍할 수 없다는 태도다. 과세 강화(16.7%), 복지정책(25.0%), 금융자본 규제(25.0%)가 경제민주화의 과제라고 답한 대기업은 드물었다. 이들 과제는 중소기업 조사에서도 별로 높은 지지를 얻지 못했다.

공정거래 강화(대기업 58.3%, 중소기업 68.5%), 소상공인·중기 보호(대기업 45.8%, 중소기업 42.5%), 기업범죄 처벌 강화(대기업 33.3%, 중소기업 49.3%)가 상대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었으나 정치권의 답변과는 온도 차가 컸다.

주관식 항목에서 대기업들은 “파이를 키워 나가며 나누는 게 경제민주화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생길 피해가 우려된다”, “경영에 족쇄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소기업에서도 “투자와 고용 위축을 고려해야 한다”, “이슈화에만 초점을 두지 말라”, “도입에는 찬성하나 포퓰리즘 구호로 사용하는 것은 반대한다”는 쓴소리가 나왔다.

경제단체장들도 정치권의 경제민주화에 대해 “지나치게 넓고 모호한 개념”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27일 전경련 제주 하계포럼에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18일 대한상의 제주포럼 개막사에서 “대기업을 너무 질타하는 소리로 나가서는 안 된다”며 경계했다. 김기문 중소기업중앙회 회장은 지난달 “대기업들이 진정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도 “경제민주화를 대기업에 대한 응징 수단으로 활용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 설문 참여 의원 41명 명단 (가나다순)

○ 새누리당: 강석훈 권은희 김상훈 김성태 김재경 김정훈 서용교 심학봉 여상규 유일호 윤영석 이강후 이완영 이종훈 이진복 전하진 정수성 정우택 주영순 홍일표

○ 민주통합당: 김경협 김기식 김기준 김동철 김영주 노영민 부좌현 우윤근 은수미 이상직 이원욱 이종걸 장하나 전정희 정호준 조경태 홍의락

○ 통합진보당: 김제남 심상정

○ 선진통일당: 성완종

○ 무소속: 김한표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경제민주화#기업#정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