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전사령관형 전자맨’ 崔앞세워 금융 등 다른 계열사 자극 포석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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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에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

삼성그룹이 7일 현장형 경영인인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을 그룹 미래전략실장에 선임한 것은 현재의 경제위기 상황이 결코 녹록하지 않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위기를 직접 보고 듣고 오겠다”며 지난달 유럽과 일본을 방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귀국길에 기자들과 만나 “생각했던 것보다 조금 더 나빴다”며 위기감을 드러낸 바 있다.

이 회장은 이번 해외 방문을 통해 그룹이 ‘제2의 신경영’에 준할 만큼 혁신적 변화를 하지 않으면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고, 위기 돌파의 변곡점으로 ‘최 신임 실장 카드’를 굳힌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는 말로 널리 알려진 신경영을 선언한 지 정확히 만 19주년이 되는 이날 평소처럼 출근해 오후 1시 반경 퇴근했다. 이어 3시간 만에 미래전략실장 인사가 발표됐다.

최 신임 실장은 글로벌 경영감각과 빠른 판단력, 조직 장악력과 추진력을 두루 갖춘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김순택 전 실장이 회장비서실 경영관리팀장, 비서실장보좌역 등의 비서실 요직을 두루 거친 ‘가신(家臣)형 경영인’이었다면 최 부회장은 경력의 대부분을 삼성전자에서 보내며 TV와 휴대전화를 세계 1위로 이끈 야전사령관형 경영인이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1993년 신경영의 단초는 ‘품질의 위기’였지만 이번엔 ‘글로벌 시장 위기’”라며 “이번 인사는 최 신임 실장의 노하우를 활용해 금융 등 다른 계열사의 글로벌 경쟁력을 끌어올려 달라는 주문일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 회장이 유럽 방문 이후 경제위기에 따른 수요 감소와 소비자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강도 높은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공격적이고 승부욕이 강한 최 신임 실장을 앞세워 반도체, TV, 휴대전화에 이어 그룹을 이끌 새로운 성장엔진을 육성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삼성은 이 회장의 경영 복귀 두 달 만인 2010년 5월 바이오 제약 등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하고 2020년까지 23조 원을 투자하기로 했지만 아직 성과가 뚜렷하지 않아 그룹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번 인사는 삼성의 경영이 이 회장과 현장형 전문경영인 중심 체제로 재편된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이 회장이 최 신임 실장을 통해 세계 경제위기, 글로벌 시장에서 기업 간 경쟁 격화, 신사업 발굴이라는 산적한 과제를 해결하려는 ‘제2의 신경영’을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은 이날 퇴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내) 역할이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번 인사를 나와 연결시키지 말아 달라”며 일각에서 나오는 ‘경영 승계 속도론’을 일축했다.

박용 기자 par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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