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R]하루 20대 수작업으로 만드는 영국 벤틀리 크루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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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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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땀 한땀 수공으로 시대를 초월한 명차… 벤틀리 신화를 쌓는다
플래그십 모델 ‘뮬산’, 한 대에 소 17마리 필요
시트·핸들 수작업엔 한대당 37시간 걸려

①벤틀리의 마스코트인 ‘플라잉B’. ②벤틀리 크루공장에서 이 일만 수십년 해온 장인이 바늘과 실로 한땀 한땀 가죽을 꿰메고 있다. ③난트위치에서 웨일즈로 들어선 뒤 10여분만에 도착한 엘스미어 호반마을 부근의 전원에 선 벤틀리의 대표모델 ‘뮬산’. 뮬산은 벤틀리가 여섯차례 우승한 르망24시간 레이스트랙에서 어렵기로 소문난 코너의 이름이다. 벤틀리모터스 제공
①벤틀리의 마스코트인 ‘플라잉B’. ②벤틀리 크루공장에서 이 일만 수십년 해온 장인이 바늘과 실로 한땀 한땀 가죽을 꿰메고 있다. ③난트위치에서 웨일즈로 들어선 뒤 10여분만에 도착한 엘스미어 호반마을 부근의 전원에 선 벤틀리의 대표모델 ‘뮬산’. 뮬산은 벤틀리가 여섯차례 우승한 르망24시간 레이스트랙에서 어렵기로 소문난 코너의 이름이다. 벤틀리모터스 제공
《‘영국 차의 자존심’이라 할 고성능 럭셔리 세단 벤틀리. 하지만 모르는 이도 많다. 워낙에 희귀해서다. 완성차는 하루 20대 미만, 연간 8000대뿐이다. 조립도 대부분 수작업이다. 그래서 차를 인도하는 데 반년쯤 걸리고 가격도 고가(3억∼6억 원)다. 그런데도 수요는 날로 늘어난다. 벤틀리를 가장 많이 찾는 나라는 중국이지만 한국도 만만찮다. 지난해 102대가 팔렸고 6년간 판매대수는 500대 수준. 서울이라도 강북에선 보기 힘들다. 강남의 청담동에나 가야 이따금씩 본다.

이 차를 운전해볼 기회를 잡았다. 영국 크루 소재 공장 견학과 시운전 투어였다. 크루는 리버풀, 맨체스터를 잇는 삼각형의 한 꼭짓점에 해당하는 작은 도시. 19세기 런던∼맨체스터 구간을 증기기관차가 달릴 당시 철도원 숙사로 개발된 곳이다.이 공장을 지은 건 롤스로이스다. ‘숙명의 적’ 벤틀리를 고사시킬 수단으로 합병(1931년)하고는 1946년 가동을 개시했다. 벤틀리는 1998년 폴크스바겐그룹에 합류(1998년)했지만 크루 공장에선 변함없이 4000명이 일한다. 크루에는 1000명이 넘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도 일한다. 벤틀리의 요람이라 할 만하다.

‘세상의 모든 자동차메이커가 더 이상은 없다고 선언한 그 한계선을 출발점’(We start where others stop)으로 삼아 창업자 W O 벤틀리(1888∼1971)의 이상(장인의 손으로 만들어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최고성능의 차) 실현에 열정과 집념을 쏟아 붓는 의지의 용광로다.그래서일까. 주저하던 미래고객도 공장을 보고나면 주문서에 사인을 한다는 게. 열정은 어디서든 통하기 마련이다. 》

크루는 맨체스터에서 자동차로 한 시간 거리다. 지도를 보면 그 왼편에 점선이 위아래로 지난다. 웨일스(서쪽)와 잉글랜드의 분계선이다.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 등 네 영토로 구성돼 ‘UK’(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로 표기되는 대영제국의 일부다. 찰스왕세자의 공식 직함(Prince of Wales)의 그곳이다.

벤틀리가 제공한 숙소는 공장에서 15분 거리의 난트위치(타운)에 있는 전원이었다. ‘루커리 홀’이라는 호텔이었는데 이 전통 스타일의 석조건물은 작은 호수와 잔디밭에 거대한 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정원까지 갖췄다. 주변은 사방이 온통 초록의 구릉지대였다. 주변 38에이커(4만6500평)가 건축 당시(1816년) 주인 소유였단다. 호텔로 변한 건 1984년. 외벽(사암)에서 배어나오는 격조와 고풍으로 벤틀리 화보에 배경을 등장하기도 한다.

맑게 갠 봄날 아침. 전원의 청정한 공기만큼이나 상큼한 파란 빛깔의 벤틀리 한 대가 루커리 홀의 가든으로 들어왔다. 벤틀리의 플래그십 모델(대표차종)인 ‘뮬산’이었다. 길이 5.575m에 무게는 2.5t을 넘기고 배기량 6750cc(V8)의 이 둔중한 세단. 그런데도 그 팬시한 블루로 인해 오히려 도발적이었다.

상상을 초월한 일탈, 예측불가의 반전으로 일순간에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버리는 기막힌 스릴러(영화)를 볼 때와 똑같이 이 컬러풀한 뮬산은 통쾌 경쾌 상쾌하게 나를 사로잡았다.

뮬산의 운전석에서 첫눈을 사로잡은 건 수많은 동그라미다. 계기판과 통풍구, 시계와 오디오 등등. 장식 대부분이 원형인데 계기판과 시계에는 바늘이 보였다. 원형 이미지에 긴장이 풀렸다. ‘단순하고 쉬워야 편안함을 느낀다’는 벤틀리의 철학을 확인시킨 부분이다. 드디어 주행을 시작했다.

영국의 전원도로는 8기통 6750cc의 거물이 달리기에 미흡했다. 도로 폭이 좁고 교차로도 많아 고속과 급가속이 용이치 않았다. 그래도 두 시간의 주행은 진가를 확인하기에 충분했다.

전율을 느낄 만한 체험도 있었다. 1750이란 낮은 회전수에서 발휘되는 최대토크의 후폭풍인데 가속의 위력은 가공할 만했다. 핸들에 장착된 패들시프트(기어변속 레버)도 인상적이다. 대형 살롱에서 체험하는 스포츠 드라이빙의 환희란 초대형 항공기 A380에 준비된 그 어떤 놀라운 서비스도 능가할 수준이었다.

벤틀리의 창업자 W O 벤틀리는 열정의 화신이었다. 재정난으로 물러난 뒤 자기 자리에 오른 자기 차 레이서 밑에서 일할 때도, 회사를 사들인 롤스로이스가 자신과 벤틀리를 도태시키기 위해 테스트 드라이버로 수족을 묶을 때도 절망하지 않고 새 엔진 개발에 몰입했다.

벤틀리의 그런 열정은 열여섯 살(1904년) 철도회사 견습공 시절부터 존경한 최고시속 104km 기록수립의 전설적인 증기기관차, ‘스털링 싱글’의 설계자인 패트릭 스털링에게서 왔다. 열정은 전염되며 전설은 전설이 낳는다.

그런 그의 열정과 철학은 벤틀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회사 비전이 증거다. 키워드는 ‘개발’과 ‘장인정신’이다. 크루 공장은 장인정신의 쇼룸이다. 페인팅 외에 대부분 공정이 ‘코치빌더’(Coach builder·옛날 마차제작 장인)의 전통대로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주문생산’이 가능한 것도 이 덕분. 외관과 시트의 색깔은 물론이고 장식할 나무의 무늬와 종류, 바닥 카펫의 색도 선택할 수 있다.

가죽 작업을 살펴보자. 뮬산 한 대에는 소 17마리분이 필요한데 그 소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같은 북부유럽, 거기서도 방목장의 수소 것만 쓴다. 북부와 방목소를 고집하는 건 파리가 없고 울타리에 부딪치지 않아야 가죽에 상처가 없어서다. 암소는 임신 중에 가죽이 늘어나 피한다. 시트와 핸들의 수작업엔 차량 한 대당 37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롤스로이스 등 어떤 차보다도 길다.

벤틀리는 새 V8엔진 개발을 최근 완료했다. W12엔진(6000cc)이 탑재돼온 콘티넨털 시리즈(GT 및 GTC)에 얹을 계획이다. 개발책임자인 폴 윌리엄스는 “벤틀리 최초의 8단 기어에 최고속도 303km, 평소 조용하다가도 스포츠 드라이빙 모드로 돌아서면 가슴을 뛰게 할 강력하고도 웅장한 사운드를 내는 감성터치가 이 엔진의 핵심”이라며 “GT카를 좀 더 스포츠카에 접근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어서 젊은 고객이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명품이란 뭘까. 지출이 단순한 소비에 그치지 않고 교환가치만으로 평가되지 않는 물건이 아닐지. 그래서 벤틀리를 탄다는 것, 그게 W O 벤틀리의 열정을 공유하는 거라고 이해한다면 그에게 벤틀리는 당연히 명품이다. 벤틀리는 돈의 가치를 뛰어넘는 멋진 차다.

크루=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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