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하도급 위반해도 “알아서 고쳐라”

  • Array
  • 입력 2012년 5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공정위, 발주 일방취소 삼성-LG전자 등 42곳 적발
“불법입증 어려워”… 자진시정땐 과징금 면제 논란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 LG전자 등의 하도급법 위반 혐의를 잡고도 피해 협력업체에 손해배상 등 자진 시정만 하면 과징금 부과를 면제해주기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위는 지난해 실시한 하도급 서면실태조사 결과 42개 전기·전자업체가 협력업체에 하도급을 맡겼다가 일방적으로 발주를 취소한 혐의를 적발했다고 10일 밝혔다. 42개 기업에는 국내 가전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삼성·LG전자는 물론이고 삼성SDI, 에스엘씨디, LG에릭슨, SK텔레시스, 대한전선 등 대기업이 상당수 포함됐다.

공정위는 이들 업체를 상대로 추가 조사에 나서는 대신 부당하게 발주를 취소한 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는 등 자진 시정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삼성·LG전자 등 12개 업체는 3, 4월 자진 시정조치를 마무리했으며 나머지 30개 업체는 6월까지 자진 시정을 진행할 계획이다.

공정위가 하도급법 위반 혐의가 있는 업체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는 비판도 일각에서 나온다. 현행 하도급법은 일방적으로 발주를 취소한 업체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하도급법의 허점과 전기·전자업종의 계약관행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주장한다. 공정위가 과징금을 부과하려면 이들 업체가 협력업체의 잘못이 없는데도 일방적으로 발주를 취소했다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제품 변경 주기가 짧은 전기·전자업종은 관행상 계약서나 전산시스템에 발주 취소 이유를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는 사례가 많아 부당 발주 취소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연간 수십만 건에 이르는 발주 취소 가운데 위법행위를 전부 걸러내 제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번에는 발주 취소로 피해를 본 협력사들에 피해보상이 가능하다는 점을 알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원청업체의 자진 시정 금액이 실제 피해액수에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3, 4월에 자진 시정한 12개 업체 가운데 협력사 피해를 배상한 업체는 5개 업체로 손해배상액은 총 6억 원에 불과했다. 5개 기업의 하도급법 위반 혐의가 있는 발주 취소 건수가 377건인 것을 감안하면 건당 손해배상액은 160만 원에 그친다.

공정위는 일단 업체들의 자진 시정 절차를 지켜본 뒤 손해배상액이 지나치게 적거나 발주 취소 혐의가 구체적인데도 아예 손해배상에 나서지 않는 업체에 대해 6월부터 현장조사를 거쳐 제재하기로 했다. 또 공정위는 앞으로는 납기일이 지난 뒤 발주를 취소하면 무조건 하도급법 위반으로 처벌하도록 하도급법을 개정할 방침이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대기업#기업#공정거래위원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