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이진]정치인과 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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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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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경제부 차장
이진 경제부 차장
‘정치인들은 내세울 만한 일은 더 부풀리고 불리하면 모르쇠로 피해 나간다.’ 평소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요즘 선거철을 맞아 새삼 되새겨지는 말이다. 어디 국회의원에게만 적용되는 표현이겠는가. 대통령도 이 틀에서 벗어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5월 중순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코스피가 1,600을 넘어서자 청와대가 나섰다. ‘코스피가 참여정부 출범 당시의 592와 비교하면 약 3배로 상승했으니 역대 정부 가운데 최고 실적’이라는 글을 청와대 브리핑에 올렸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그해 신년 연설에서 “코스피가 600 선에서 두 배 이상 높아졌다”고 자랑했다.

김대중 정부가 막을 내린 시점과 비교할 때 노 정부 시절 코스피는 184% 넘게 올랐다. ‘꿈의 상승률’이라고 할 만하다. 같은 기간 미국의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는 57%, 일본 닛케이평균주가는 62% 올랐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587%, 브라질은 534%, 러시아는 450% 수직 상승했다. 신흥국으로 눈길을 돌리는 순간 노 정부가 자랑한 증시 성적표는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2007년 12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도 선거운동 막바지에 코스피를 거론했다. 한 증권사를 방문해 “제대로만 경제가 된다면 내년에 주가 3,000을 돌파할 수 있고 임기 내에 제대로 하면 5,000까지도 올라가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했다. 주가가 저평가된 가장 큰 요인은 정권 때문이라며 정권 교체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다음 해 2월 이 대통령이 취임한 날 코스피는 1,701이었으나 글로벌 금융위기 등의 여파로 연말에는 1,124로 하락했다. 올해 2월 말까지 이 대통령 임기 중 코스피는 19% 올랐다. 같은 기간 45% 가까이 상승한 인도네시아 증시와 비교하면 초라하다. 하지만 미국(3%) 브라질(1%) 러시아(―17%) 일본(―30%)과 비교하면 선전(善戰)했다.

두 정부 관계자들에게 증시 성적을 비교하라고 하면 모두 “우리가 더 낫다”고 주장할 것이다. 지금 여야는 물론 대통령을 꿈꾸는 잠재 후보들도 대선 국면이 본격화하면 증시 발전에 앞장서겠다고 말할 것이다. 주식양도차익에 세금을 더 매기겠다고 을러댈지언정 증시를 투전판이라고 싸잡아 손가락질할 정치인이 과연 있을까. 직접투자자만 500만 명에 이르는 증시에 등을 돌리면 아무리 비전을 제시해도 외면받기 십상이다.

하지만 꺼내기 쉬운 말과 달리 정치인들의 실제 행동은 금융시장 발전을 가로막는 일이 잦다. 이번 18대 국회에서 자본시장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될 위기에 놓인 점은 대표적 사례다. 4월부터 시행되는 개정 상법에 맞춰 자본시장법도 고쳐야 하지만 공천을 받지 못한 의원들이나 유세하느라 정신없는 후보들은 남의 일처럼 여긴다. 상법을 적용받는 비상장사는 정관을 변경하지 않고도 자사주(自社株)를 소각하고 주가연계증권(ELS)을 회사채처럼 발행할 수 있지만 현행 자본시장법을 따라야 하는 상장사는 손발이 묶인다. 이만저만한 역차별이 아닐 수 없다.

새로 무대에 오를 정치인들이라면 기업들이 마음 놓고 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정치인들은 ‘주가 상승은 내 업적’이라고 목소리 높이기 전에 주가가 오를 수 있도록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주저 없이 나서야 한다.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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