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 재건축단지 “문의전화 하루 한두통… 그것도 집주인 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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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강남 재건축단지 공인중개소 ‘잔인한 봄’


《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종합상가. ‘재건축 전문’이란 간판을 내건 공인중개업소 유리창마다 ‘급매’ ‘급전세’라고 쓰인 종이가 빼곡히 붙어 있다. 하지만 가게 안은 손님 하나 없이 텅 비어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내 공인중개업소. 상가 유리창에 ‘급매물’ 전단지를 붙여 놓았지만 찾는 손님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였다. 공인중개사들은 “재건축 시장이 죽어간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상가 내 공인중개업소. 상가 유리창에 ‘급매물’ 전단지를 붙여 놓았지만 찾는 손님이 없어 개점휴업 상태였다. 공인중개사들은 “재건축 시장이 죽어간다”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였다.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한 공인중개업소 사장은 “인근의 청실, 미도아파트 일대까지 치면 공인중개업소가 100여 개나 되는데 적자가 쌓여 20% 정도가 점포를 내놓은 상태”라며 “가게가 안 나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자리만 지키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강남 재건축시장 위축의 진원지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주공아파트에는 ‘박원순은 61평, 아들은 54평, 우리 네 식구는 18평’ 등의 항의성 플래카드가 곳곳에 내걸렸다. 1단지 상가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소형주택 비율 확대안이 나온 뒤 예전 같으면 ‘이 정도까지 나오겠나’ 싶은 가격에 급매가 나와도 안 팔린다”고 전했다.

‘부동산 불패’ 신화의 상징과도 같았던 강남 재건축 단지들이 흔들리고 있다. 부동산 경기침체 여파에다 소형주택 의무비율 확대를 둘러싼 서울시와의 갈등이 더해져 거래가 실종됐기 때문이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재건축 아파트 매매가격은 심리적 지지선인 3.3m²당 3000만 원 선까지 위협받고 있다.

[채널A 영상] 강남도 추락? 재건축 부동산 길게봐야 성공한다

○ 매수세 실종, 가격은 뚝뚝

“재건축은 투자용인데 요즘처럼 타산이 안 맞으면 누가 사겠어요. 철거 시작되고 분양계약까지 끝난 청실아파트조차 시세보다 3000만 원 이상 낮춰 내놔도 사겠단 사람이 없어요.”(대치동 우방공인중개사 손진숙 대표)

강남 재건축시장은 올 들어 빠르게 악화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강남 3구의 3.3m²당 매매가는 지난해 1월부터 계속 하락해 9일 현재 3100만 원 선까지 주저앉았다. 2008년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던 2009년 3월(3055만 원) 이후 최저치다.

개별 아파트 거래도 금융위기 당시와 비슷하다. 지난달 거래된 은마아파트 77m² 신고가격은 7억9000만 원으로, 2008년 12월 7억500만 원 이후 3년 만에 8억 원 선이 깨졌다. 개포주공 3단지 36m²는 최근 5억4500만 원에 계약됐다. 실거래 가격이 조사된 2009년 1월 이후 가장 낮다. 개포주공은 인근에선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개포 현대나 경남아파트 등 500채 안팎의 단지들은 호가조차 형성되지 않고 있다.

서초구와 송파구의 하락세도 가파르다. 지난달 초 17억5000만 원에 거래됐던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84m²는 최근 16억 원대 급매물이 나왔다. 지난해 1월 11억5800만 원에 팔린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103m²도 이달 초 9억6750만 원에 거래됐다.

○ ‘강남 불패? 이제는 옛말’


강남 재건축시장의 매기를 끊은 악재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부동산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지난해 말 취득세 감면 혜택이 종료됐고 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경향 변화로 학군 수요도 급감했다. 여기에 재건축 시 소형주택 의무건축 비율 확대, 용적률 상향 보류 등 박 시장 취임 이후 공표된 서울시 주택정책이 투자심리 위축에 결정타를 날렸다.

정책 변수로 혼란에 빠진 시장에선 대기 매수세마저 뚝 끊겼다. 재건축 단지가 밀집한 개포동과 대치동은 지난해 12월 한 달 동안만 해도 거래건수가 각각 101건, 61건에 이르렀지만 올해 들어 3월 현재까지 각각 24건, 16건으로 급감했다.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문의전화가 하루에 한두 통뿐인데, 그나마 대부분 집을 내놓은 집주인이 시세를 알아보려고 걸어온 것”이라며 허탈해했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전문가들은 강남 재건축의 추가 하락이 이어질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임병철 부동산114 팀장은 “정책 불안감에다 경기 침체로 투자매력이 줄어 계속적인 가격 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건축이 계획대로 진행된다고 해도 과거처럼 가격이 급등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관측도 나온다. 대치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사장은 “하락세가 진정될지는 몰라도 투기지역 해제나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등 추가조치가 없다면 반등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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