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Dream/부동산패트롤]“낡은 집 어쩌라고…” 개포주공의 한숨

  • Array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박선희 경제부 기자
박선희 경제부 기자
“세금 내고 의무를 다하는 집주인의 권리도 있는 것 아닌가요. 평생 낡은 집 수리해가며 재건축만 기다려온 세월이 부질없게만 느껴집니다.”

요즘 기자의 메일함에는 개포주공 주민들의 하소연이 매일같이 쌓이고 있다. 재건축시 소형주택 의무비율을 50%까지 높이라는 서울시의 방침에 대한 분노의 표현이다.

한 개포주공 주민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정부 대신 주민들이 나서서 집을 지으라는 말이냐”며 한숨짓기도 했다.

소형비율 확대 방침에 서울시와 주민 간에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소형주택 공급 확대를 위해 현재 소형 아파트가 많은 단지에는 재건축 이후에도 소형을 많이 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해당 주민들은 갑자기 소형 비율을 높이면 재건축으로 얻는 자산가치가 크게 떨어져 사업 자체를 추진할 수 없다고 반박한다. 주민들의 재산권도 인정해줘야 한다는 얘기다.

논란이 계속되는 사이 강남 재건축 시장은 이미 직격탄을 맞았다. 시장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매수세가 실종됐다. 몇 달 사이에 수천만 원이 떨어진 급매물이 나와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

2008년 금융위기 때보다 더하다는 비명까지 나온다. 지난해 10월 박원순 서울시장 취임 이후 서울지역 재건축 아파트의 시가총액은 벌써 2조 원 이상 빠졌다.

향후 인구 추이와 1∼2인 가구 증가 등 새로운 흐름에 부응하기 위해 소형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서울시의 방향은 원칙적으로 옳다.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서울시의 정책목표에 반대할 사람도 없다. 하지만 성급한 결정은 당초의 좋은 의도와 달리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소형 비율을 높이면 사업성이 떨어져 신규주택 공급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강남에 소형주택을 많이 지어도 서민들은 살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결과적으로는 서민에게 혜택을 주지도 못하면서 신규 주택 공급만 줄어들어 집값을 올리고 전월세난을 부추길 수도 있다. 피해는 고스란히 무주택 서민에게 돌아간다.

서울시는 올해 들어서만 뉴타운 재검토, 초고층 재건축 규제, 소형의무 비율 확대, 국민주택규모 축소 건의 등 기존의 정책을 뒤집는 조치를 잇달아 내놨다.

부동산 정책에는 ‘주거안정’과 ‘시장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서울시의 정책은 ‘주거안정’의 목표에만 매몰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시장은 정책의 일관성과 신뢰성을 요구한다. 정책목표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거나 갑작스럽게 정책방향이 바뀌면 시장은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서울시가 개포주공 주민들의 하소연을 단지 ‘가진 자들의 배부른 소리’로 치부해선 안 될 이유다.

박선희 경제부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