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의 눈/김상수]美의 ‘애국심 마케팅’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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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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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수 산업부 차장
김상수 산업부 차장
‘It's halftime(하프타임이다).’

어두운 터널을 걸어가며 미국의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나지막이 외친다. 이어 그는 “모든 팀은 전반전이 끝난 뒤 하프타임(중간 휴식 시간)에 상대팀을 어떻게 이길지 전략을 짠다.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이스트우드는 “미국은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라며 “우린 다시 일어설 것이고 세계의 모든 사람은 우리의 엔진 소리를 듣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디트로이트에 있는 자동차업체 크라이슬러가 재기했듯 미국 국민들도 ‘후반전’에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일어설 테니 모두 용기를 가지라는 메시지다.

올해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 중계방송에서 선보인 이 광고는 논란이 됐다. 크라이슬러가 2009년 파산 위기에 몰렸을 때 125억 달러(약 14조 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해 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위해 연말 대선을 의식해 내보낸 ‘보은(報恩)의 광고’가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CNN이나 로이터통신은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켰다”며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오바마에 대한 지원 의도와 상관없이 이 광고가 ‘made in USA(미국산)’를 강조하기 위한 ‘애국심 마케팅’ 전략의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광고 끝에는 ‘Imported from Detroit(디트로이트산 수입)’라는 자막이 나온다. 크라이슬러가 내건 슬로건으로 자동차의 메카인 디트로이트에서 생산한 믿을 수 있는 차라는 의미다. 경기 침체로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 자국 산업 보호 경향이 강해지면서 제너럴모터스(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애국심 마케팅’을 강화하는 추세다.

2008년 하반기 글로벌 금융위기가 몰아치면서 미국 자동차업계는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2009년 2월 열린 슈퍼볼에서는 GM, 포드, 크라이슬러의 ‘빅3’ 업체 중에서 단 한 곳도 광고를 내지 못할 정도였다. 하지만 정부의 공적자금 지원과 대대적인 구조조정, 애국심 마케팅이 어우러지면서 재기에 성공했다.

지난해 GM은 세계에서 902만 대를 판매해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일본의 도요타자동차에 내줬던 세계 1위 자리를 되찾아왔다. 포드는 순익 202억 달러(약 22조6846억 원)로 1988년 이래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크라이슬러도 매출이 550억 달러(약 61조7650억 원)로 2010년 대비 31% 증가했다.

유럽 경기 침체와 내수 감소로 고민 중인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국내외 전체 판매량(659만 대) 가운데 17%(113만 대)를 차지한 미국 시장에서 현지 자동차업체들의 애국심 마케팅 공세까지 겹쳐 걱정이 크다. 현대차가 올해 슈퍼볼 중계방송에 미국 앨라배마 공장 임직원이 단합된 모습을 보인 ‘All For One(모두가 하나를 위해)’이라는 주제의 광고를 내보낸 것도 미국 지역경제에 기반을 둔 브랜드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경제성장과 고용창출의 근간(根幹)이 되는 대형 제조업체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 정치권, 국민이 힘을 모으고 있다.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떤지 곱씹어보게 된다.

김상수 산업부 차장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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