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왜 사야하죠? ‘애플세대’의 반란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경기 용인시 기흥구의 신규 입주 아파트에 2년 전부터 세를 살던 남자연 씨(29·여) 부부는 최근 인근의 새 아파트로 전세를 옮겼다. 남 씨는 “최신 인테리어와 첨단 설비를 갖춘 신규 입주 아파트에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이사가 귀찮기는 하지만 2년 뒤 새 아파트로 다시 옮길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새 아파트 물량이 많은 용인 일원에는 남 씨처럼 ‘임대’ 생활을 즐기는 젊은층이 많이 살고 있다. 이 지역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매매나 재계약에 연연하지 않고 신규 입주단지를 중심으로 2년마다 전세를 갈아타는 젊은층을 ‘전세 메뚜기족(族)’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내 집 마련에 다 걸기(올인)하던 기성세대와는 확연히 다른 젊은층의 주택관념은 부동산 시장의 지형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스마트(Smart)’ ‘국제화(Globalization)’ ‘자기지향성(Self-orientness)’이 강하면서 내 집 장만의 첫 세대인 30대들은 스마트폰, 태플릿PC 등 정보화 기기 활용에도 능수능란해 ‘애플세대’로도 불린다. 대형 아파트 대신 소형 아파트, 수익형 부동산의 인기가 높아지고, 임대시장에서 전세보다 월세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의 기저에는 이들 애플세대가 자리 잡고 있다.

[채널A 영상] 400여가지 세금내기, 스마트폰 앱으로 간편하게

○ ‘집은 주거수단’이라는 스마트족

애플세대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며 부동산 투자 시 해외경기 동향을 따질 정도로 깐깐하다. 또 해외연수나 잦은 해외여행 등으로 해외체류 경험이 풍부해 부동산을 투자 대상으로 삼는 것에 매우 보수적이다.

이런 성향은 부동산 관련 각종 설문 결과에서 잘 드러난다. 한국갤럽과 부동산114에 따르면 연초에 발표하는 설문에서 ‘올해 집을 살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30대는 2010년 40.6%에서 지난해 21.9%로 줄었고, 올해는 13.0%로 급감했다. 40대(2010년 43.2%→2012년 21.9%)나 50대(30.3%→17.8%)보다 감소세가 훨씬 가파르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 전국 1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소비자들의 7가지 라이프스타일’ 조사에서도 ‘집을 사지 않고 전세로 살아도 상관없다’고 답변한 30대는 41.1%로 응답자 전체 평균(37%)보다 높았다. 이 연구원의 박정현 책임연구원은 “부동산처럼 하드웨어적인 것에 소유욕이 집중된 기성세대와는 달리 30대들은 다양한 문화적 경험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며 “제한된 소득으로 다양하게 즐기며 살겠다는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목돈이 들어가는 주택 구입을 꺼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 부동산시장 패러다임 변화를 이끈다

이들 30대가 주택 구입에 흥미를 잃은 데에는 외부적 요인도 작용했다. 우선 결혼이 늦어지면서 생애 최초로 내 집을 마련하는 시점이 미뤄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90년 27.9세였던 남성 초혼연령은 2000년 29.3세, 2010년 31.8세로 늦춰졌다. 여성도 같은 기간 24.8세에서 26.5세, 28.9세로 점차 늦어지는 추세다.

또 2000년대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30대 직장인들의 구매력으로는 감당하기 힘들어진 상황, 어렵게 구매하더라도 2010년 이후 지속되는 부동산 침체로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상황 등도 30대의 부동산 구입을 가로막는 요인이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오피스텔을 구입한 정모 씨(33)는 “아파트를 사려다 결국 매월 임대료 수입을 기대할 수 있는 오피스텔을 샀다”며 “가격은 오르지 않았지만 월세를 받을 수 있어 만족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30대 애플세대의 등장이 국내 부동산시장의 패러다임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소유와 욕망의 대상’이자 ‘신분 과시의 수단’이던 아파트의 의미가 변하고 있다는 것.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을 ‘투자대상’ 대 ‘거주공간’으로 보는 시각이 8 대 2 비율이었다면 애플세대의 등장으로 앞으로 이 비율이 5 대 5로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도 “현재의 만족과 자기 위주의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한 애플세대는 저축과 절약으로 ‘내 집 마련’을 위해 모든 고생을 참아내던 부모세대와는 다른 부동산투자 문화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송충현 기자 balgu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