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슈]신한류 스타들, 숙소에 명강사 두고… 영어로 일기쓰고… 독하게 배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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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류 스타들 ‘신무기’ 외국어 실력은 ‘기획사 관리 능력’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노란 붙임머리를 하고 나온 장근석. 트리제이컴퍼니 제공
지난해 11월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노란 붙임머리를 하고 나온 장근석. 트리제이컴퍼니 제공
#. 배우 설경구(44)는 2004년 영화 ‘역도산’을 찍으면서 진땀을 뺐다. 배역을 위해 20kg 이상 체중을 늘리는 것도 고통스러웠고, 생소한 프로레슬링을 배우는 일 역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머리숱이 빠지게 할 만큼 험난한 산은 따로 있었다. 바로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미션’이었다. 반년 넘게 개인 교습을 받았음에도 일본어의 벽은 높았다. 그는 촬영 내내 “일본어가 익숙지 않아 감정 전달이 쉽지 않다”며 “잠잘 때조차 일본어의 장벽이 마음을 짓누른다”며 고개를 저었다.

#. 지난해 8월 일본 사이타마 현의 한 대형 공연장. ‘아시아의 프린스’로 불리며 일본에서 엄청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배우 장근석(25)이 무대로 나왔다. 그가 인사를 건네자 팬들의 환호성이 갑절로 커졌다. 원어민 수준에 가까운 유창한 일본어 실력에 곳곳에서 감탄사가 터졌다. 그는 별다른 통역의 도움 없이 현지 행사는 물론이고 언론사 공식 인터뷰 등까지 완벽하게 소화했다. 한 일본 기자가 물었다. 대체 어디서 일본어를 그렇게 배웠느냐고. 그는 싱긋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팬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 틈틈이 공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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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종’ 스타도 외국어의 달인


‘한류(韓流)’란 말은 이제 귀가 따가울 정도로 익숙하다. 특히 아이돌 스타를 중심으로 최근 불고 있는 ‘신(新)한류’는 과거 한류의 주무대였던 중국, 일본, 동남아 등을 넘어 미국, 유럽, 남미 등으로까지 그 지평을 넓혔다.

그런데 최근 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한류 스타들을 보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어떻게 외국어를 저렇게 잘할까?’ JYP엔터테인먼트 정욱 대표는 “과거에도 외국어를 잘하는 스타는 꽤 있었지만 그들 대부분이 ‘해외파’였다”면서 “지금은 ‘토종’ 한류 스타 중에서도 외국어의 달인이 넘치는 시대”라고 말한다.

그 비결은 뭘까. 첫손에 꼽히는 것은 역시 국내 기획사의 체계적인 관리 능력이다. 한류 1세대였던 안재욱(41)의 경우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지만 사실 아직도 중국어를 유창하게 하진 못한다. 그의 소속사 제이블엔터테인먼트의 신재범 실장은 “예전엔 지금처럼 해외 활동이 짜임새 있게 진행되지 않았다”면서 “해외에 상주하는 경우가 드물었고, 활동 범위 역시 제한돼 외국어 구사의 필요성 자체가 적었다”고 설명했다.

2009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조나스 브러더스 북미 투어에서 공연을 펼치
고 있는 원더걸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09년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에서 열린 조나스 브러더스 북미 투어에서 공연을 펼치 고 있는 원더걸스. JYP엔터테인먼트 제공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해외 시장이 커지고, 그곳에서 활동하는 시간 역시 많아지면서 한류 스타들의 외국어 구사 능력은 곧 인기와 소득으로 직결되는 상황이 됐다. 기획사들이 스타들의 외국어 능력 향상에 열을 올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특히 데뷔 전부터 기획사의 체계적인 관리를 받는 아이돌 가수들은 언어 교육이 필수 코스다. SM엔터테인먼트 이수만 프로듀서는 한류 초창기부터 “해외 활동의 핵심은 언어 구사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YG엔터테인먼트 양현석 대표 역시 한류의 완성은 ‘외국어 마스터’에 있다는 생각이다.

○ 외국어 공부도 전략적으로

한류가 진행되면서 기획사의 외국어 교육 방법은 진화를 거듭했다.

웬만한 기획사들은 스타들에게 어학연수 기회를 제공한다. SM에 소속된 가수들의 경우 1년 이상 장기 해외연수를 가기도 한다.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끈 뒤 미국에 진출한 보아는 물론이고 ‘소녀시대’ ‘슈퍼주니어’도 그런 혜택을 받았다.

교육 방식도 체계적으로 바뀌었다. 큐브엔터테인먼트 신인 개발팀의 박재현 실장은 “교육 방식에서 최근 10년 새 노래나 춤보다도 오히려 비약적으로 발전한 부분이 바로 어학”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외국어 교육이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최대한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외국어를 익힐 수 있게 하는 등 교육 방법이 세련됐다. 큐브의 경우 숙소 물품 등의 이름을 외국어로 적어 놓고, 외국 음악을 수시로 틀어 놓으며, 가수들이 직접 외국어 일기를 쓰게 한다. 연습생들을 대상으론 주기적으로 구두, 필기시험 등을 본 뒤 성적 우수자에겐 해외 문화를 체험시켜 주는 ‘당근’까지 준다. ‘원더걸스’(JYP)처럼 해외 활동이 잦은 그룹의 경우 아예 기획사에서 전문 어학 강사를 숙소에까지 붙여 어학 트레이닝을 시키기도 한다. 요즘엔 아예 멤버별로 외국어를 하나씩 특화해 교육함으로써 ‘선택과 집중’ 전략을 취하는 경우도 많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외국어 강사의 수준 역시 몇 년 새 높아졌다고 귀띔했다. 10년 전만 해도 기획사 관계자의 인맥을 통해 알음알음 아르바이트생 수준의 강사를 섭외했다면 이제는 단시간에 큰 효과를 볼 만큼 준비된 강사들을 채용한다는 얘기다.

○ 노래 연습 안 해도 외국어 공부는 한다


기획사의 진화한 관리 능력 못지않게 주목할 만한 부분이 신한류 스타들의 기본적인 ‘어학 자질’이다.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씨는 “연예인들은 워낙에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력이 좋은 데다 성격까지 적극적인 경우가 많아 어학 공부에 유리하다”고 했다. 또 “특히 최근의 젊은 한류 스타들은 어릴 때부터 외국 문화에 익숙한 세대라 어학 습득 능력이 발군”이라고 덧붙였다.

실제 장근석의 경우 일본 진출 이전부터 음악이나 패션 등 일본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일본어 습득 시간을 크게 단축시킬 수 있었다. 장근석의 소속사 트리제이컴퍼니의 최현영 팀장은 “일본 음악과 드라마 등을 보다 이해가 안 되면 본인이 답답해하더라. 그렇게 공부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본어가 늘었다”고 했다. 또 “워낙 낯을 가리지 않는 데다 실수해도 개의치 않을 만큼 밝은 성격 역시 어학 공부에 유리하게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정욱 대표는 “요즘엔 외모만 보고 일단 뽑고 보는 길거리 캐스팅 대신 주로 오디션 등을 통해 스타를 발굴하는 시스템”이라며 “그렇다 보니 언어가 특기인 지원자는 물론이고 언어 습득 능력 자체가 뛰어난 끼 많은 원석(原石)이 늘었다”고 설명했다.

스타들 역시 어학 능력이 본인을 어필하는 무기이자 경쟁력이란 사실을 잘 알아 공부에 더 적극적이다. 지상파의 한 예능 PD는 이렇게 말했다. “요즘엔 10대 아이돌 스타도 어학 능력이 자신의 몸값과 미래에 작용할 비중을 정확히 계산해 내거든요. 노래 연습은 안 해도 외국어 공부는 독하게 하는 이유죠.”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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