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만 무상보육…어린이집 찾기 ‘하늘의 별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월 3일 22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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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순번이 2416 번이라고요? 보육비는 받으나 마나네요."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사는 주부 황수미 씨(33)는 3일 인근 한 어린이집에 14개월 아이를 등록하려다 깜짝 놀랐다. 정원 65 명인 이 어린이집에 자리가 나길 기다리는 아동이 무려 2415 명에 달했기 때문이다. 마포구의 다른 어린이집 역시 국공립은 최소 수백 명, 사립은 수십 명 씩 대기아동이 있었다. 황 씨는 "정부에서 무상보육을 실시한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보고 좋아했는데, 정작 보육을 맡길 어린이집 찾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며 한숨을 쉬었다. 당장 이 달에 휴직이 끝나는 황 씨는 당분간 친정집에 아이를 맡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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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국회가 올해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0~2세 무상보육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정작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정치권과 정부가 보육의 우선순위를 모른다'며 불만이다. 당장 무상보육 사각지대가 된 3~4세 부모들은 보건복지부 인터넷게시판에 몰려가 거친 항의글을 쏟아내고 있고 혜택을 받게 된 0~2세 부모들 역시 "돈을 줘도 보낼 어린이집이 없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공립 어린이집 1000 명 대기는 기본

통계 상으로 어린이집은 남아돈다. 보건복지부 보육통계에 따르면 2010년 말 기준 우리나라 어린이집 정원은 155만6808 명인데 현재 어린이집에 다니는 인원은 127만9910 명이다. 27만6898 개의 자리가 비어있는 셈이다. 최성락 보건복지부 보육정책관은 "저출산으로 매년 어린이가 줄기 때문에 어린이집은 지금도 충분하다"며 "이젠 보육비 지원을 높이고 어린이집의 품질을 올리는 데 초점을 맞출 때"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장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일부 지방이나 시설이 열악한 곳은 자리가 남긴 하지만 서울 수도권이나 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은 과포화 상태다. 일부 어린이집은 정원에 여유가 있어도 보육교사가 부족하다는 등의 이유로 추가로 받지 않는다. 서울 국공립 어린이집은 최소 100 명 이상, 많게는 2000 명 이상씩 자리를 기다리고 있다. 부모들은 비용이 저렴하고 안심할 수 있어 국공립을 선호하지만 전체 어린이집 중 국공립 비중은 5.3%에 불과하다.

정치권이 2030세대의 표를 노리고 무상보육 예산에 총 2조3913억 원을 투입하는 와중에 기획재정부는 어린이집 시설 증개축에 고작 119억 원만을 편성했다. 그나마 일부 리모델링 비용을 제외하고 신축에 들어가는 비용은 19억8000 만원에 불과하다. 중앙정부 지원으로 새로 만들어지는 국공립 어린이집 정원은 700개, 현 정원의 0.04% 수준이다. 성문주 남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 시설에는 정부가 지원을 해도 정책적 효과에 한계가 있다"며 "무상보육도 좋지만 대도시의 국공립 시설을 대폭 늘려 수요-공급을 맞춰주는 조치가 선행됐어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돼지띠는 '저주받은 세대'(?)

보건복지부 게시판에는 이번 전계층 무상보육 혜택에서 빠진 3~4세 부모들의 항의로 가득하다. 황금돼지해인 2007년생과 2008년생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가뜩이나 그 해 태어난 아이들이 많아 경쟁이 치열한 마당에 보육비 마저 받지 못하다 보니 불만이 터진 것이다. 항의 글을 올린 이미숙 씨는 "엄마 손길이 한참 가야 하는 0~2세 보육은 지원하면서 정작 보육이 필요하고 뭔가를 배워야 하는 3~4세를 지원하지 않는 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복지부 보육통계에 따르면 해당 연령대 아동 중 어린이집 및 유치원에 다니는 아동 비중은 0세는 27.9%, 1세는 51.7%에 불과한 반면 4세는 80.8%, 3세는 71.9%에 달한다. 갓난아기는 출산휴가, 휴직을 해서라도 집에서 아이를 키우지만 3세가 넘어가면 외벌이 가정이라도 교육을 위해서 시설에 보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3~4세 무상보육을 전면적으로 실시하기에는 재정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최소한의 나랏돈으로 최대한의 생색을 내야 한다는 정치권의 셈법이 작용하면서 정작 급한 3~4세보다 먼저 0~2세 무상보육이 먼저 실시됐다.

보육비 지원에 맞춰 양육수당이 늘어나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0~2세의 경우 시설에 다니면 무조건 보육비를 지원받지만 부모가 집에서 키우면 차상위계층과 장애아동에 한해 월 10~20만 원의 양육수당이 지급된다. 보육시설에 맡기는 집은 상당수가 맞벌이이고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집은 외벌이가 대부분인 만큼 올해의 무상보육 혜택은 대부분 맞벌이 가정에 돌아가게 된다. 이 때문에 일부 인터넷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맞벌이와 외벌이 간에 공방전 마저 벌어지는 실정이다.

서영숙 숙명여대 가정아동복지학부 교수는 무상보육도 중요하지만 출산휴가, 육아휴직 확대 등을 확대해 내 아이를 내가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사회적 환경 조성이 더욱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국회의원들이 예산 지원에 앞서 0~2세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 인프라나 정책적 지원이 갖춰졌는지를 우선적으로 살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노지현기자 isityou@donga.com

이상훈기자 janua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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