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中企, 3重苦에 죽을 맛… 연초가 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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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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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 은행 진단 ‘8개 공단’ 암울한 현장

‘중소기업, 정말 심각하다. 원자재 가격 상승, 수주 감소, 매출채권 회수 지연의 삼중고가 겹쳐 2012년 초 고비를 맞을 것이다.’

지난해 말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담보와 보증 위주의 은행 대출 관행을 개선하는 작업을 추진할 무렵 부산, 광주, 대구, 기업은행 등 중소기업 대출 비중이 높은 4개 은행은 금융당국에 이러한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경기 반월, 시화, 인천 남동, 서부, 대구 성서, 비산염색관리공단, 부산 신평·장림, 광주 첨단산업단지 등 8개 공단에 입주해 있는 중소기업들의 사업 현황을 긴급 점검한 결과다. 중장기적인 금융지원체계 개편도 중요하지만 일부 중소기업에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절박한 진단이다.

○ 공장 팔아도 현상유지 못할 판


전국 공단 가운데 임차료가 비싼 편인 경기지역의 반월과 시화공단에 있는 회사들은 매출채권을 회수하지 못해 ‘흑자 부도’ 위기에 몰렸다. 모 디스플레이 부품업체는 최근 공장을 시세보다 싸게 팔겠다고 내놨지만 마땅한 인수자를 찾지 못한 채 호가만 계속 내리고 있다. 인천 남동공단과 시화공단은 겉으로 보기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과 큰 차이를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기업은행 관계자가 최근 실적을 점검한 결과, 자동차나 휴대전화 관련 업체는 영업이익이 나는 반면 건설 기계 목재 철강업을 하는 회사는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매출 곡선이 일제히 하락세다.

광주 첨단산업단지는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속내가 딴판인 지역이다. 공단별 공장가동률은 80%에 육박하지만 많은 공장이 손해를 보면서 공장을 돌리고 있다. 전자부품업체인 A사는 삼성전자 광주공장이 백색가전제품 생산물량을 매년 줄이는 추세를 보이면서 실적이 곤두박질치고 있다. 대기업의 생산량 감소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주요 생산품인 발광다이오드(LED) 조명이 너무 많이 공급되면서 해당 중소기업 공장들에는 부품 재고가 쌓이고 있다. 광주은행은 “대기업이 공장을 해외로 옮겨가는 추세여서 중소기업의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산지역의 창고업은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폭발사고라는 돌발 변수로 수산물 보관량이 크게 늘어나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예외일 뿐 신평·장림공단의 조선업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섬유산업으로 유명한 대구의 비산염색관리공단을 둘러본 대구은행 관계자는 “업황이 양호한 편이나 체감경기는 악화일로에 있다”고 분석했다.

○ “고용창출은 한가한 소리”


이처럼 여신담당자들이 현장 점검에 나선 것은 ‘회사 관계자의 목소리만 들어도 회사의 수익성을 가늠할 수 있다’는 은행 사람의 타고난 감각이 필요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이른바 ‘선제적 대응’을 하려면 실적이 나온 뒤에는 늦어질 수밖에 없다”며 “은행의 판단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주요 점검 대상은 평소와 달리 대출 원리금 상환이 며칠씩 늦거나 아직 상환일이 많이 남았는데도 만기 연장을 요구하는 업체들이다. 점검 결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8개 공단에 있는 중소기업 가운데 자금난을 호소하지 않은 곳은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은행들은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한계상황에 몰린 점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이원배 부산은행 중소기업부 심사역은 “위기상황에서 어느 정도 견딜 수 있는 업체에는 금리 감면이나 상환 유예 등의 혜택을 주면서 끌고 가는 반면 부실이 많은 업체는 지원을 끊어야 하는데 이 기준을 정하기가 어느 때보다 힘들다”고 말했다.

일부 중소기업은 피부에 와 닿는 대책을 호소하고 있다. 중소 엔진장비업체를 운영하는 박모 대표는 “얼마 전 우리 회사 직원이 결혼을 해서 월세를 구하는데 어떤 은행에서도 대출을 해주지 않아 내가 개인 돈을 빌려줬다”며 “고용창출을 위해 중소기업을 지원한다고 하는데 현장에선 그런 거창한 목표보다 당장 생존이 급하다”고 하소연했다. 조유현 중소기업중앙회 정책개발본부장은 “은행별 중소기업대출 이자율을 공시해 기업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정책금융기관의 경영실태 평가 때 중소기업 대출에 부실이 생겼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배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수용 기자 leg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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